<5328>제101화 우리 서로 섬기며 살자 : 27. 아내 트루디와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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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밥 존스 재단은 학과목 외에 예절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거기엔 이성교제도 포함된다. 또 미술관·공연장·박물관 등 문화를 즐길 시설이 풍부했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남학생들은 공연장에 함께 갈 파트너를 찾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파트너를 정한 남학생은 정장으로 차려입고 여학생을 정중하게 에스코트해야 했다. 만약에 여학생이 남학생의 초청을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하면 벌점의 대상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한번도 여학생 기숙사로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3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학생이었다. 표정이 밝고 귀여운 얼굴인 데다 키가 작은 게 맘에 들었다. 친구들에게 알아봤더니 고등학교 1년생 트루디였다. 늘 환한 웃음을 띠고 있다고 해서 별명이 스파클(sparkle, 불꽃)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영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토요일 공연에 함께 가자는 내용의 편지를 그녀에게 썼다. 마침내 토요일, 나는 두근거리는 맘을 달래며 여학생 기숙사로 갔다. 뜻밖에도 트루디는 검정색 벨벳드레스에 여섯 송이 장미를 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데이트 신청에 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학생들 사이에 빌리는 여학생 기숙사로 편지를 한 통도 보내지 않은 학생으로 소문 나 있어요. 모두들 누가 먼저 빌리의 편지를 받나 궁금해했어요."

나보다 학년으로는 2년, 나이로는 4년 아래인 이 여학생은 그후 나의 아내가 되었다. 그날 공연을 다 보고 여학생 기숙사까지 에스코트 해준 뒤 그녀에게 기도를 해주었는데, 신앙심 깊고 리더십 강한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지 모두들 고민이 많았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당시 밥 존스 학교가 인정하지 않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뉴욕집회에 다녀온 뒤로는 어릴 때의 꿈이었던 정치가나 농림부장관도 좋지만 복음전도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딱히 무슨 과를 지망할지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정을 걷고 있는데 '목사가 되어 고국에 돌아가 가난한 청소년들을 도우라'는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밥 존스 대학교 신학과로 맘을 정했다. 칼 파워스씨도 나의 계획에 동의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나는 우등상과 함께 최고상인 올 어라운드(All Around) 소년상을 받았다. 그리고 밥 존스 대학으로 진학했다. 트루디도 나의 뒤를 밟았다.

대학교 4학년 때 주말 전도여행을 다녀왔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어 있었다. 대학 재학생 3천여명 중 상당수가 밥 존스 고등학교 졸업자인 덕에 전국웅변대회 우승의 '신화'는 그대로 유효했던 것이다.

밥 존스에서는 본인만 열심히 하면 서머스쿨 등을 통해 한 학기 혹은 두 학기 일찍 졸업하는 것이 가능했다. 1958년 5월, 나는 한 학기를 앞당겨 대학교를 졸업했고 트루디는 서머스쿨이 끝나는 그해 8월이면 5학기 만에 교육학과를 졸업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졸업식을 마치고 트루디와 데이트를 하면서 청혼을 했다.

"대학원을 마치면 곧바로 고국으로 돌아가 청소년을 위해 일할 계획인데 나와 함께 한국에 갈 수 있겠소?"

트루디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7년 전에 떠나온 황폐한 조국에 대해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종사촌이 한국 전쟁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신문에서 한국 관련 기사를 열심히 찾아 읽었을 그녀로서는 한국이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녀와의 만남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대학교 4학년 초에는 트루디가 다른 남학생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이 내 눈에 띄어 한동안 냉전을 치른 적도 있었다.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주고받은 반지까지 뽑아 돌려줬을 만큼 심각했다. 그때 트루디는 자신이 그 남학생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곧 오해가 풀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좀 기다렸다고 한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그 자리에서 속전속결 인데 비해 트루디는 즉각적인 반응을 하기보다는 좀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녀의 성격은 지금껏 우리의 결혼생활에서도 좋은 윤활유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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