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공론화 後정계개편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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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노무현(武鉉)후보가 정계개편에 대한 발언의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다.

후보 당선 직후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의 복원'이라는 정계개편 구상을 밝힌 후보는 29일에는 "지금의 정치구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계개편의 행보를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정계개편 공개추진=후보는 정계개편이 '인위적'이 아닌 '자연발생적''자발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계개편을 '야당 의원 빼내기'쯤으로 보는 부정적 시각을 의식해서다.

그는 '선(先)공론화 후(後)추진'의 구상을 밝히고 있다. 후보가 연일 공개적으로 정계개편을 언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에게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작업을 한 뒤 본격적인 정계개편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당내에선 그의 정계개편과 관련한 여러 언급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수용할 자세가 됐다는 공개적 메시지이자 정계의 지각변동에 대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후보가 상정한 정계개편 시기는 언제일까.

후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6월 지방선거 전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지 않겠느냐" 라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큰 틀의 정계개편이 일어날 시기는 6월 지방선거 이후가 되겠지만 그 전에 '상징적인' 변화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양김(金)과는 밀착, JP와는 거리두기=후보의 측근들은 이런 후보의 발언이 30일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후보가 YS와 공식적으로 만나는 것은 12년 만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29일 만난 후보가 바로 다음날 YS를 만나는 것은 양金간의 가교 노릇을 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후보측은 나아가 YS와의 회동 효과를 영남권 선거대책으로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날 후보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정치는 상호의존적 적대관계여서, 한쪽이 변하면 다른 쪽이 변할 수밖에 없다"며 "金대통령과 金전대통령에게 인사드릴 수 있는 차기후보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흐름상으론 지금 움직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균열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구체적 교섭사실은 부인했지만 이미 민주계 및 구 통합추진회의(統推)인사들과 후보 측근들은 깊숙이 교감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 측근은 "후보가 YS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부산에서는 YS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민주계 인사들이 일제히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보 주변에선 수도권 중진 K의원을 비롯해 일부 수도권 의원들이 빨리 움직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 후보의 부산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신상우(辛相佑)전 국회부의장은 "앞으로 변화요인이 있을 것"이라며 "K의원이 YS 비서관 출신 의원들의 기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후보는 김종필(金鍾泌)자민련 총재에 대해선 냉담한 반응이다. JP와는 노선이 다르다는 입장인 것 같다.

◇전망=후보는 6월 지방선거 이전에라도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대선정국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나 6월 지방선거에서 영남권 공략이 가능하다면 의외로 대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정계개편은 영남권 지방선거가 풍향계가 될 것 같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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