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金대통령 탈당 괜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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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노무현(武鉉)후보가 26일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평화방송에 출연, "金대통령이 탈당을 결심해도 괜찮으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다.

후보는 또 "현재 고위 당정회의나 주례회동 같은 게 없어졌다"며 "이미 당과 정부 간의 공식 관계는 끊어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의 탈당 문제는 대통령이 적절하게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金대통령에게 탈당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탈당하는 걸 말리지도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후보는 지난 25일 서울지역 지구당 순방 중 "야당에서 대통령의 탈당 얘기도 들리더라"는 기자들의 얘기에 "대통령이 탈당하면 내게 유리한데, 야당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록 사담(私談) 중이었으나 대통령의 탈당이 대선에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따라서 후보의 일련의 발언들은 金대통령의 탈당에 대비한 분위기 조성용으로 해석된다.

그가 金대통령의 탈당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낌새는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후보는 지난 24일 서울시지부에서 "대통령과 대통령후보 간의 관계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했고, 같은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金대통령과 차별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DJ와의 차별화가 아닌, 대통령을 공격해온 역대 여당 후보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DJ에게 "당신이 탈당하더라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후보로선 金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벌써 'DJ의 양자(養子)'라는 논리로 부산·경남 지역에서 그를 공격하고 있다.

또 후보도 대통령 세 아들 문제에 대해 언제까지나 침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金대통령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민주당을 떠나는 것으로 후보의 입장을 편하게 해주는 방식이 가장 유력하다.

더구나 金대통령이 세 아들 문제 때문에 당과 후보에 미안해한다는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金대통령이 탈당하면 후보는 '민주당=DJ당'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DJ를 싫어하는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DJ의 탈당이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정된 직후 또는 후보가 공언해온 정계개편 이전으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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