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적론 '敵前분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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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국방백서의 주적론 삭제 또는 대체 문제를 논의키로 한 것은 국방부의 반발에 따른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일부 NSC 상임위원들은 남북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측면에서 주적론 삭제 등을 제기하고 있으나, 국방백서 발간의 주무부서인 국방부가 완강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국방백서의 발간이 다음달 말로 다가왔음에도 여전히 "주적 표현에 대해 삭제 및 대체를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원쑤' '과녁'으로 지칭하고 있고,경의선 복원 등 초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도 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적론을 바꿀 수 없다는 분위기가 국방부 내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주적론을 계속 사용할 경우 임동원(東源)외교안보특보의 방북 이후 이산가족 상봉 등 새로 물꼬가 튼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6차 남북 장관급회담 등에서 주적론 삭제를 요청한 바 있는 북한이 특보의 방북때 또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하자 정부 일각에서 주적론 삭제 및 변경을 적극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적론 삭제 및 변경문제를 국방부에만 맡겨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정부 일각의 의도대로 NSC 상임위원회 결정을 통해 국방백서의 주적론이 삭제 또는 변경될지는 미지수다.

국방부의 반발은 물론 잇따른 선거를 앞두고 야당과 보수세력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주적론은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을 인정하고,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과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위해 만들어졌으며,1995년부터는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 '주적인 북한을 현실적인 군사위협' 등으로 표현이 강화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남북간 군사당국자회담을 통해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주적론 삭제 또는 변경 문제를 검토하지 않겠다는 게 국방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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