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업계 월드컵 타고 "세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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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7억명의 사람들이 같은 시각에 한곳을 지켜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이야기다. 이번 월드컵을 TV를 통해 지켜볼 세계사람은 연인원 4백20억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4년전 프랑스 월드컵때보다 10%정도 늘어날 것을 전제한 것이다. 이번 월드컵의 경기는 모두 64게임. 경기 비중에따라 시청인구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한게임에 7억명정도가 관전하는 셈이다.

이같은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월드컵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선다. 지금까지 월드컵은 올림픽보다 높은 TV 시청율을 보여왔다. 월드컵은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어느 이벤트보다 흥행성이 높은 '빅 이벤트'이다.

일시에 범지구적인 시선이 집중되다 보니 월드컵은 경기자체에만 그치지않았다. 거대한 마케팅, 선전, 또는 정치의 마당이 되기도했다.

국내 월드컵 분위기는 아직 달아오르지않고있다. 흥분에 휩싸여있었던 14년전 서울 올림픽 직전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차분함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이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이미 물밑 여러 분야에서는 월드컵을 의식하며 생사를 건 승부전이 뜨겁게 펼쳐지고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국내 정보통신(IT)업계다. 월드컵에 거는 기대도 매우 크다. KT의 전병섭 월드컵 통신 사업단장은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가 IT강국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가전업체들은 이번 월드컵을 컬러화에 이어 한국 TV산업이 또 한번 도약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각 방송사들이 HD(고화질)급 프로그램을 늘리고 있는 데 힘입어 디지털 TV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시장 선점을 위해 일찌감치 불꽃튀는 접전을 벌이고있다. 또 이동통신 업체들도 이번 월드컵 시기를 대망의 IMT-2000을 상용화하는 계기로 삼고 결전의 날을 숨죽여 기다리고있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KT등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이번 월드컵 공식후원업체가 아니다. 따라서 직접 월드컵을 거론하고 판촉전을 펼 수는 없다. 각 업체들은 이점을 감안해 자사의 브랜드나 제품을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이른바 앰브시(ambush)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

◇가전업체=가전 업체들은 디지털TV를 올해의 전략 상품으로 정하고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전업계의 치열한 판촉전에 힘입어 올 1분기 국내 디지털 TV 판매량은 지난해 4분기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약 10만대에 이르렀다. 이에따라 지난해 국내 TV시장에서 디지털TV의 판매대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였으나 올 해는 25~30%가 예상되고있다.

LG전자는 3월부터 5월까지 전국 주요 도시 백화점을 돌며 디지털TV 로드쇼를 벌이고 있다. 이기간중 40·42·60인치 PDP TV와 49·56인치 프로젝션TV 를 집중 홍보하고있다.

삼성전자는 현대자동차와 공동마케팅 행사를 벌이고있다. 지난달부터 이달말까지 삼성전자의 디지털TV PAVV와 현대자동차의 뉴 그랜저 XG를 동시에 구입하면 추첨을 통해 월드컵 입장권을 주고있다. 또 브라질 축구 스타인 펠레를 디지털TV 모델로 출연시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대우전자는 4월 한 달간 32인치 HD TV 등을 전국 80여개 백화점에서 30%이상 할인 판매하고 있다. 외국기업으로는 월드컵 공식후원사인 한국후지필름이 추첨등을 통해 고객에게 월드컵 입장권을 주는 행사를 벌이고있다.

◇이동통신업체=SK텔레콤,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는 동기식 IMT-2000 서비스인 CDMA2000-1X EV-DO를 월드컵을 전후해 서비스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기존의 CDMA2000-1X망에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보다 최고 10배 이상 빠른 속도의 초고속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올 1월 IMT-2000서비스를 상용화한 SK텔레콤은 이달말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것이다.

월드컵 공식후원사인 KTF는 여러가지 점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

KTF는 EV-DO 서비스 시연을 위해 지난 1월 장비계약을 체결하고 현재 시스템 최적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5월부터는 상용 서비스에 들어간다. LG텔레콤은 국내 유일의 동기식 IMT-2000 사업자란 사실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또 KT그룹의 IMT-2000 법인인 KT아이컴은 비동기식 IMT-2000을 월드컵 기간중에 선보일 계획이다. 이회사관계자는 "IMT-2000의 가장 큰 매력인 동영상 전화를 시범 서비스하게된다"고 말했다.

제정갑(jk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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