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남은 아태재단 '비리온상' 부담덜기… 직원 65명중 4~5명만 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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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태재단이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활동을 잠정 중단키로 했다. 18일 열린 이사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명맥만 유지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재단은 金대통령이 퇴임하는 내년 2월까지 장행훈(張幸勳)사무총장 등 3~4명의 관리인과 연구원 1~2명만 남게 됐다. 재단의 주 업무인 연구·학술활동은 사실상 중단하는 셈이다.

아태재단은 金대통령이 1994년에 설립했다. 92년 대선 패배 후 7개월 간의 영국생활에서 돌아온 뒤 초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97년 대선 때까지 아태재단은 'DJ 정계복귀의 발판'이자 '정권교체의 산실'로 기능했다.

이런 까닭에 金대통령의 집착은 남달랐다. 퇴임 후 "재단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고 지난해엔 동교동 사저(私邸)옆에 새로 건물까지 지었다. 때문에 재단의 활동중단 결정 배경을 놓고 "金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가 주변에서 나왔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재단 관련자들이 이런 저런 비리에 연루되면서 대선정국의 정치쟁점으로 이용되는 데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말했다.

이수동(守東) 전 상임이사가 구속되고 金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金弘業)부이사장과 친구인 김성환(金盛煥)씨의 비리의혹 등이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여론의 따가운 비난을 받아왔다. 한나라당이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하고 "재단 해체"까지 요구하고 나선 터여서 더 끌고가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얘기다.

내부적으론 무리한 건물 신축 등으로 인한 재정악화까지 겹쳤다. 이사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설훈(薛勳)의원은 "차입금이 30억원인데 모금이 안돼 이자내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전체 상근직원 65명 중 4~5명만 남기고 모두 내보내야 하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재단은 일단 金대통령 퇴임 때까지 활동을 중단한 채 숨고르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아태재단이 어떤 형태로든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지, 아니면 5공화국 때의 일해재단과 같이 해체의 길을 걷게 될지는 전적으로 이후 정치상황에 달려 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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