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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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 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문인수(1945~ ) '채와 북사이,동백진다'

폭발하는 매화 향기의 북채로 붉은 동백의 몸을 쳐라. 선혈의 천둥소리, 난타소리, 봄이면 섬진강은 긴 소리꾼이 된다. 소리를 떼어놓고 전라도를 말할 수는 없다. 달을 소리북이라고, 매화를 미친 향기의 북채라고, 동백 지는 소리를 천둥소리 난타소리로 읽은 시인의 눈. 그는 광부처럼 절묘한 말들을 캐내었다. 지금쯤, 섬진강 어디쯤에 매화가 폭발하고 지금쯤, 선운사 어디쯤에 동백이 질까.

천양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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