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항목서 문화전반 자질로 국민경선 세부 내역 밝혔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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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겨운 황사 덕에 칭찬할 일도 생겼다. '빗방울 속 황사'(10일자 1면 사진)는 작은 빗방울 하나도 놓치지 않는 순발력으로 거친 황사 바람의 뒤끝을 투명하게 걸러낸 보도 사진이다. 황토 먼지를 품은 채 원추리 이파리에 맺힌 이슬이 마치 풀잎 위의 한반도 같다. 이미지 하나만으로 아름다운 기사를 쓴 사진기자의 감각을 첫 장 한가운데에 배치한 산뜻한 편집도 좋다. 감각 얘기 하나 더. '홍걸씨…'라는 기사 제목(13일자 3면)을 보던 딸이 느닷없이 '걸씨'라는 이름도 있느냐고 묻는다. '현철씨' 이후 관행이 된 이런 방식의 표기가 되풀이되는 탓이다. 차제에 아예 표기 원칙을 만들면 어떨까? 권력 주변에서 은밀하게 '근친화'시킨 암호 같은 표현을, 또 국민적 연인에게나 쓸 호칭 방식을 특정인에 대해 계속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저널리즘 특유의 감각인지 궁금해서 하는 말이다.

민주당 경선은 미국식 예비선거를 본뜬 것이지만 두 나라의 토양은 매우 다르다. 그래서 이번 경선의 정치적 의의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대의원을 제외한 국민선거인단의 투표율이다.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미국 예비선거의 총 투표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 각 후보 사퇴 이후 대의원과 국민선거인단 각각의 지역별 투표율 추이도 이번 선거와 향후 정치의 풍향 분석에 필수 항목이다. 그런데 총 투표율 보도만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선거인단이 등을 돌리고…'(8일자 4면)라는 지적만 있을 뿐이다. 민주당 홈페이지에서도 찾을 수 없는 각 지역 투표율의 세부 내역, 이것은 차후 경선 관련 보도의 고급화를 위해 유념할 점이 아닐까.

기획 의도는 좋지만 '대선 예비주자 노선 해부'(12일자 1, 4, 5면)는 요즘 무차별 유행하는 미국식 '평가 지상주의'를 다시 보는 것 같다. 계량화가 곧 객관이라고 믿는 획일적 과학주의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검증 영역을 너무 좁게 설정했다. 보수-진보의 그물로 잡을 수 없는 중요한 정책 노선은 없는가. 또 보수와 진보에도 각각 고급과 저급이 있지 않은가. 단일한 계량 스펙트럼으론 상대적 비교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 정책의 절대 수준이나 정치적 소양과 안목은 측정할 수 없다. 욕심 같지만 예술에서 과학, 즉 문화 전반에 걸친 인문적 소양이나 자질도 이제는 검증할 때가 됐다. 궁핍한 정치, 척박한 우리의 삶과 문화는 정치를 적나라한 권력게임으로만 이해하는 빈약한 교양과 윤리에서 비롯한 것이지 이념적 착종 때문만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의 현실에 더 충실한 또 다른 기획을 기대한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언론 관련 발언 공방에 관한 모든 신문의 보도는 '안개 속 술래잡기'였다. 언론에서 흘러나온 내용을 언론이 도로 취재하는 희한한 일이 생긴 까닭이다. 어쨌든 당사자들의 정확한 기억과 대면이 설사 가능하다 치더라도 입장에 따라 사실은 이미 달라졌기 때문에 결론은 추측과 사실의 중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중앙일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독자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이 상황을 자초한 한국 언론 전체에 대한 외부의 비판(9일자 7면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과 내부의 우려(10일자 6면 '언론이 위기 자초하나')에 공감한다. '기문(記聞)'을 기사와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결국은 언론 자신에게 상처만 입힌 이번 일은, 누구도 편안한 관객일 수 없는 이런 계절에 언론의 일상적 균형 감각과 자기 감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보여준 사례다. 이번 일이 중앙일보에 타산지석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새겨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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