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美 用美 전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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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 전 '맥도날드 불매운동 선언문'이란 e-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선언문에 따르면 무기강매와 악의 축, 그리고 금메달 강탈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선 맥도날드 불매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단순히 왜곡된 국수주의의 표출이 아니라 미국의 횡포에 대한 자본주의적 저항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맥도날드 買' 허와 실

맥도날드 불매운동을 하면 맥도날드 본사에서 부시 정부를 압박해 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 정치의 정곡을 찌르는 기발한 발상이다. 사실 미국 정치는 자본가 민주주의라 불릴 만큼 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때문에 미국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란 외압의 행사는 미 국내정치에 반향을 일으키며 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분명히 과거에 비해 단수 높은 반미운동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선언문의 본질적 문제는 반미 감정의 현안에 대한 왜곡되고 오도된 이해에 있다. 우선 '악의 축' 발언을 보자. 북한을 악의 원천으로 지목하고, 필요하다면 군사적 행동을 통해서라도 북한의 체제와 정책을 변화시키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이 발언은 다분히 문제가 있다. 특히 핵과 미사일 현안에 대해 협상의사를 계속 밝혀온 북한을 일방적으로 불량국가로 내몰고 한반도에 긴장 국면을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 발언이 '반미'운동의 기제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 모두가 악의 축 발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성향의 미 언론, 민주당 소속의 상하 양원 의원들, 그리고 대부분의 지성인들은 이 발언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미국 정치의 다원 구조를 무시하고 부시 대통령을 미국 그 자체로 간주, 반미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심각한 구체성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 비판세력과 연계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무기강매 주장은 더욱 문제시된다.F-15K가 차기전투기(FX)사업의 신 기종으로 선정된 것은 미국 정부와 군수 로비스트의 압력 때문이 아니다. FX의 기종 선정은 우리 정부의 고유 권한이며 누구도 이를 침해할 수 없다. 무기 획득에 있어서는 가격·성능, 그리고 기술이전이란 항목 못지 않게 전략적 구상, 군사동맹, 동맹국과의 상호호환성이라는 변수도 중요하다. 이를 무시한 획득 결정은 엄청난 부정적 부메랑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더구나 F-15K는 1차 선정 대상이다.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 결렬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기다리고 볼 일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미국의 군수업체들은 한국 방산시장을 그네들의 독점시장으로 간주해 왔다. F-16 선정 시에도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맥도널 더글러스라는 두 미국 업체만 수주 경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미국 외에 프랑스·유럽·러시아 업체들을 입찰에 참여시킴으로써 한국 정부의 달라진 무기 획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미국 업체가 1차 선정됐지만, 이번 획득 과정은 미국의 기득권이 항상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주고 있다. 따라서 무기 강매라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라 할 수밖에 없다.

감정 앞서 實利 놓쳐서야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강탈 건만 하더라도 이성과 상식을 가지고 보면 반미 감정의 허구성을 이내 간파할 수 있다. 金선수가 금메달을 강탈당한 것은 미국이나 오노 선수 탓이 아니다. 오판을 저지른 호주 출신 심판과 판정 번복을 금지하는 국제빙상협회 경기규칙 제29조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물론 오노가 홈 그라운드의 덕을 본 것은 사실이고, 또한 제이 레노의 망언에 분노를 금치 못하지만 미국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미국은 아직도 우리의 국가 이익에 사활적 존재다. 왜곡에 찬 반미주의, 상황 논리에 따른 부화뇌동의 반미감정, 그리고 맹목적 친미만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슬기롭게 정립하기 어렵다. 미국을 알고(知美), 적절하게 활용(用美)할 때 미국과 상생의 이해관계를 다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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