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결혼 실패 딛고 당당한 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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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증권회사 여성 애널리스트인 이모(28)씨는 첫번째 결혼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두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일반 예식장에서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렀던 첫번째 결혼식과 달리 오는 21일 서울 모 호텔에서 열릴 예정인 결혼식에는 5백명이 넘는 하객을 초대했다.

이씨와 신랑 최모(34·회사원)씨는 이번주 두사람의 사진이 담긴 청첩장을 손님들에게 발송했다. 이씨는 구슬 장식이 박힌 아이보리색의 웨딩 드레스를 입고 복고풍의 작은 크라운(왕관)을 쓴 채 꽃길을 걷게된다.

"약혼자나 저나 한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해서 의기소침해지긴 싫었어요. 떳떳하게 잘 살자는 의미로 제대로 식을 올리자고 했죠."

초혼처럼 청첩장 돌려

지난 2월 재혼한 정모(33·헤드헌터)씨의 경우엔 재혼식을 두 번 했다. 시댁이 있는 부산과 남편 김모(36·외국계 회사 근무)씨가 업무상 자주 머무르는 홍콩에서 각각 식을 올렸다. 홍콩에서의 결혼식은 연회장을 빌려 칵테일 파티 형식으로 꾸몄다.

정씨는 "재혼한다는 걸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싶어 번거롭지만 결혼식을 두 번 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혼 정보회사 닥스클럽이 올 해 재혼 회원 3백20명(50세 미만)을 대상으로 2월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혼 회원은 초혼 회원보다 호텔 예식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화려한 결혼식을 꿈꾸는 것.

초혼자들은 결혼식 장소로 일반 예식홀(47%)·공공장소 예식(18%) 다음으로 호텔 예식(14%)을 원했지만 재혼자들은 일반 예식홀(31%)에 이어 호텔 예식(26%)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객 수에 있어서도 최근 1년 내에 결혼한 재혼 커플 51쌍의 하객수가 평균 3백17명으로 초혼 커플 3백41명에 비해 큰 차이가 없었다.

여기엔 재혼하는 커플 수가 많아졌다는 점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커플 10쌍 중 2쌍은 남녀 모두가 재혼이거나 한쪽이 재혼이었다.

"예전엔 재혼한다는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했죠. 요즘엔 젊은 사람들도 재혼을 많이 하다보니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근사한 재혼식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아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재혼 전문 커플 매니저 강인숙씨의 말이다.

재혼할 때는 초혼 때 아쉬웠던 점 등을 보완해 더 완벽한 결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두번째 남편과 식을 올린 정모(30·웹 디자이너)씨는 이번엔 친정 식구들에게도 폐백을 했다.평등한 부부 생활을 하자는 의미를 담아 남편과 상의해 결정한 일이었다.

신혼 여행지로는 비교적 덜 붐비는 태국의 크라비를 택했다. 첫 결혼 땐 괌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편히 쉬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쓴 사랑의 편지 낭독

물론 아직까지는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보단 조용하게 재혼식을 치르는 커플도 많다. 그러나 요란하진 않더라도 개성있는 재혼식을 준비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지난 1월 재혼한 박모(36·은행원)씨 결혼식에는 주례가 없었다. 신랑과 신부는 혼인 서약문을 함께 읽고 직접 쓴 사랑의 편지를 서로에게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님께도 "그동안 마음 고생 시켜드려 죄송하다"는 내용이 포함된 편지를 읽어드렸다. 각각 초등학교 3학년·1학년인 두 사람의 딸·아들도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들러리로 참여했다. 신랑 신부는 재혼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을 도와준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사의 카드가 담긴 작은 꽃바구니를 선물하는 순서도 마련했다.

재혼 전문 컨설팅 회사인 SS웨딩 김경미 실장은 "틀에 박힌 결혼식보다는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담은, 자신들만의 예식을 원하는 것이 최근 재혼하는 커플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말했다.

글=김현경·사진=박종근 기자

재혼식과 재혼 문화가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재혼식이라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몇몇이 모여 조용하게 치르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신세대 재혼이 많아지면서 두번째 결혼도 '아름답고 당당하게'치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재혼식은 물론 혼수품·신혼여행 등에도 지극한 공을 들인다. 다시는 실패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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