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쉬리+친구+박하사탕+반칙왕 … 폭소 뷔페에 눈물 양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재밌는 영화'는 한국 영화계의 또 다른 자신감이다.

'쉬리''공동경비구역 JSA'

'친구'로 이어졌던 대박 영화가

없었다면 기획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재밌는 영화'는 1990년대 후반 일기 시작한 한국 영화의 신화적 성공에 힘입어, 오히려 이번엔 거꾸로 한국 영화를 비틀어 보겠다는 기획 의도가 관심을 끌었다. 국내 최초의 패러디 영화에 도전한다는 실험성이 신선했다.

모방·흉내·풍자 등을 아우르는 패러디는 '기성' 작품의 개작이다. 비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재밌는 영화'에는 스물여덟편의 한국 영화가 등장한다. 새 영화의 장면 장면이 어떤 전작을 희화화했는가를 따져보는 게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재밌는 영화'는 직공법을 택했다. 최근의 흥행작을 섭렵했다면 큰 어려움 없이 '원재(原材)'를 간파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대다수 관객이 영화의 순간 순간을 눈치채며 따라갈 수 있느냐는 것. 일종의 모험인 셈이다.

영화는 안전장치로 한국 최초의 본격 블록버스터로 인정받는 '쉬리'를 내세웠다. 전체의 틀을 '쉬리'에서 빌려오고, 그 사이에 '친구''반칙왕''인정사정 볼 것 없다''엽기적인 그녀' 등을 인용하며 얘기를 끌고간다. 부정적으로 보면 '쉬리2'로 불릴 만큼 의존도가 심한 편이다.

'쉬리'의 모티프였던 남북 정상회담이 '재밌는 영화'에선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로 대체된다. 월드컵으로 가까워진 한·일 관계에 불만을 품은 일본 극우 세력 천군파가 대회를 방해하려고 무라카미(김수로) 일당과 상미(김정은)를 한국에 밀파하고, 한국에선 비밀 경찰요원 황보(임원희)와 갑두(서태화)가 이들과 맞선다. '쉬리'의 최민식·김윤진이 김수로와 김정은으로, 한석규·송강호가 임원희·서태화로 '변신'한 것이다.

관건은 '재밌는 영화'의 재미다. 할리우드 패러디 영화 '무서운 영화'처럼 제목만큼의 재미를 어떻게 요리했는지가 성패를 가를 게 분명하다.

'재밌는 영화'는 일단 물량 공세로 밀어붙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40계단 살인 장면과 교차하는 주먹 신(scene), '친구'의 거리 질주 신과 마지막 장동건 피살 신, '엽기적인 그녀'의 지하철 구토 신과 타임 캡슐 매장 신, '반칙왕'의 헤드록 신과 공중회전 신 등.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대치 신은 '공동해양구역'의 한·일 선박 대치 신으로 교체되고, '넘버3'의 3류 건달패에는 '간첩 리철진'의 어리숙한 공작원 이미지가 겹쳐진다. '서편제'의 명장면, 즉 판소리를 부르며 푸른 논길을 내려오는 롱테이크 부분에선 한국 특수요원과 일본 천군파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재밌는 영화'는 온갖 웃음 코드를 동원한다. 신파적 멜로부터 엽기적 폭력까지 총망라했다. '거짓말'의 가학·피학적 장면은 원작 이상의 코믹 엽기로 둔갑하고, '박하사탕'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울부짖는 설경구는 "나, 돌아버리겠네"를 외치는 김수로가 대신한다.

한마디로 총천연색 뷔페 상이다. 과장된 장면, 과잉된 감정이 연속되며 웃음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90년대 한국 영화사를 정리하겠다는 '과욕'마저 엿보인다.

'재밌는 영화'는 나열식 폭소를 드라마란 큰 축에 녹이려고 애를 썼다. '총알 탄 사나이''못말리는 비행사' 등 에피소드 위주의 할리우드 패러디 영화와 다르게 월드컵·남북회담이란 사회적 빅 이슈를 뼈대로 삼았다. 김대중 대통령(김인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정진갑)이 무선 햄을 하다 정상회담을 열고, 성당에서 손을 마주 잡고 형·동생을 부르며 죽을 때까지 우정을 맹세하는 모습 등을 삽입했다.

하지만 이같은 개그적 폭소와 묵중한 구성이 매끈하게 연결되지 않아 아쉽다. 웃음의 홍수 속에서 사회 풍자란 패러디 정신은 낙관적 희망으로 돌변한다. 애니메이션 '슈렉'에서와 같은 감칠 맛과 골계미를 찾기 어려운 것.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웃음과 액션 탓에, 즉 긴장과 이완이란 리듬감이 빈약한 까닭에 작품 전체가 버겁게 보이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주유소 습격사건'을 연출한 김상진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장규성 감독은 이 영화에서 선배의 작품을 밀어내는 장면을 끼워넣었다. 과연 '재밌는 영화'가 대중성 측면에서 그런 수준에 도달할지? 올 들어 부쩍 체력 쇠퇴가 감지되는 한국 영화계에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지 궁금하다. 하여튼 장르 확대 차원에선 분명 반가운 작품이니까. 15세 이상 관람가. 12일 개봉.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