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소도구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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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닭'을 데리고 어떻게 공연을 하라는 거예요."

지난해 10월. 중국 선전(深?)의 유명 테마파크 초청으로 원정 공연을 떠난 '알렉산더 매직' 소속 마술사들은 주최 측이 준비한 비둘기들을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뚱뚱한 몸매에 회색빛 날개를 자랑하는 중국 토종 비둘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술용 비둘기는 따로 있다"고 주최 측을 설득, 간신히 중국 마술사들의 백비둘기를 빌려와 공연을 진행했단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마술사들과 함께 공연하는 비둘기는 대부분 러시아산 백비둘기다. 하얀 깃털에 몸집이 다른 비둘기의 절반 정도로 작다. 비교적 순한 성격에 움직임이 많지 않다는 것도 장점. 하지만 몸이 약하고 예민해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시름시름 앓기 십상이다. 놀라운 것은 국내 마술사들이 기르는 백비둘기가 대부분 한 핏줄이란 점. 1세대 마술사인 이흥선(80)씨가 30여년 전 외국인 마술사에게서 얻은 6마리가 '시조'다. 이씨가 서울 마포구 염리동 한옥 자택에서 직접 기르며 국내 마술사들에게 분양하기 시작했다. 이은결 등 유명 마술사들의 비둘기는 모두 이 집 출신이다. 동물은 방역 등 통관절차가 까다로워 아직 수입하는 업체가 없기 때문. 마리당 20만~25만원에 팔린다. 아마추어 마술사들은 보다 구하기 쉽고 저렴한 염주 비둘기나 공작 비둘기로 대신한다. 백비둘기보다 덩치도 크고 성격도 드센 편이어서 훈련하기 어렵지만 최근 마술 열풍에 힘입어 그나마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단다.

가장 인기있는 마술도구인 카드도 일반 카드와는 조금 다르다. 손이 작은 동양인을 위한 것으로, 일반 카드보다 가로.세로가 1cm 남짓 작다. 손등에 카드를 감추어야 하는 트릭이 많은데 큰 카드는 떨어뜨릴 염려가 있어서다. 플라스틱 소재 카드는 노(No). 반드시 종이 카드만 쓴다. 정전기로 카드가 서로 붙거나 손이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마술사가 손을 뻗으면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마술 지팡이의 비밀은 재료에 숨어있다. 나무나 철제로 된 일반 지팡이와는 달리 얇은 강철판을 필름처럼 말아 만든다. 돌돌 감아놓으면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지만 스위치를 누르면 말려있던 강철판이 펴지면서 보통 지팡이 크기로 늘어난다.

사람이 들어가 눕고 마술사가 가운데를 자르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상자와 같이 고급 트릭에 사용하는 마술 도구는 제작비가 평균 600만~1000만원까지 든다. 프로 마술사들은 자신의 기술에 맞게 도구를 직접 디자인한다. 제작은 단계별로 각각 다른 공장에 맡겨 진행한다. 한 곳에 전체 제작 과정을 맡겼다가는 마술사의 자존심인 자신만의 노하우가 새어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 완성 때까지 많게는 10개 업체를 돌아다녀야 할 때도 있단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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