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 되새기는 유대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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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한창인 요즘,미국 워싱턴의 홀로코스트(Holocaust·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에는 여전히 많은 유대인이 몰린다. 지난 1일 찾은 기념관의 바깥은 벚꽃축제로 흥청댔지만 안은 지옥의 풍경이었다.

특히 유대인에겐 기념관을 관람하는 일 자체가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숯처럼 타 장작처럼 쌓인 시체들, 대꼬챙이처럼 말라버린 생존자들…. 제2차세계대전 때 나치가 만든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끔찍한 풍경이다. 기념관에는 어른만 보도록 가려놓은 필름들이 있다.

나치 의사들이 유대인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이다.격추돼 바다에 빠진 독일군 조종사를 보호할 비행복을 만들기 위해 나치는 유대인을 얼음물에 밀어넣었다. 조종사의 기압적응 능력을 연구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고압실에 들어가야 했다.코피가 터지고 뇌가 부서지면서 그들은 죽어갔다.

가스실 모형 앞에서 사람들은 전율한다. 나치는 "온수 목욕을 시켜준다"고 속였고, 유대인들은 남녀가 뒤섞여 옷을 벗으면서도 모처럼 웃었다.곧이어 가스가 퍼지자 얼굴들이 일그러진다.

그렇게 6백만명이 죽었다. 유대인은 그런 지옥을 빠져나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에 이스라엘을 건설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나 부모·조부모 세대가 겪은 과거의 참상에 새삼 치를 떨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쓰라린 경험을 요즘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연결해 생각하려는 사람은 드물어 보였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온 50대 여성 하이야는 "이스라엘은 테러를 자행하는 이들만 겨냥해 공격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18세짜리 여자애가 허리에 두른 폭탄을 터뜨려 피자를 먹고 있던 죄없는 여자와 어린이를 죽이지 않았는가"라고 반박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군과 대적할 능력이 없지 않은가"라고 물을 참에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아들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버클리즈라는 유대인 남자는 질문 자체가 듣기 싫다는 듯 "노 코멘트"만 연발했다.

요즘엔 아랍쪽에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히틀러'라고 부르며 규탄하고 있다. 증오와 살육의 악순환은 언제쯤 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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