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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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늘은 나무 심는 날, 내 귀는 나무 대신 남녘의 벚꽃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시는 1992년부터 식목일을 전후해 왕벚꽃 축제를 벌이는데, 올해는 이상 고온으로 개막도 하기 전에 꽃이 시들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단다. 그래서 나온 궁리가 냉찜질. 나무 밑동에 얼음을 깔아 꽃필 때를 늦추려는 '개화 연기작전'이 지난달 19일 펼쳐졌다.

그러니까 내가 기다리는 것은 화사한 꽃 소식이 아니다. 꽃의 질서를 어지럽힌 꽃 축제의 후일담이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벚나무의 얼음찜질 호사를 비아냥거릴 생각도 없고, 벚꽃 축제에 재를 뿌리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제때 피려는 꽃조차 억누르는 현대사회의 '인심'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과 가까워져 잘된 것이 별로 없다. 소·돼지 같은 가축은 말할 것도 없고 '특별 대우'의 애완견도 예외가 아니다. 마른 배설물을 위해 인스턴트 사료만 먹어야 하고, 짖는 소리 때문에 성대 수술을 받는다.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마음대로 짖지도 못하면서,4만원짜리 '풀 코스' 미용 서비스를 받은들 과연 그게 개의 행복일까?

지구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에서 나왔다는 오영진 주교의 말은 옳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불교를 배워야 한다는 그의 성찰도 그럴듯하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의 맬컴 윌킨스 교수에 따르면 나무도 목이 마르면 비명을 지르고, 몸이 잘릴 때는 피대신 수액을 흘린다. 그 비명이 우리 귀에 들리지 않고, 수액이 피로 보이지 않을 뿐 식물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오는 26일부터 열리는 안면도 꽃박람회에는 트로트 가락에 맞춰 잎이 흔들리는 중국 윈난(雲南) 태생의 무초(舞草)가 선보일 예정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춤을 추지 않는다니, 그게 바로 감정과 생명의 증거 아니겠는가?

나무의 '권리장전' 강의가 너무 사치스럽다면 사람의 이해로 돌아가자. 난초에 음악을 들려주면 잎이 44%나 커지고, 벼는 수확이 50%까지 늘어난다는 실험 결과가 나와 있다. 임업연구원의 평가로는 홍수를 조절하고 산사태를 방지하며 맑은 물과 공기를 공급하는 산림의 공익적 기능만도 50조원에 달한다. 잊어서는 안될 그 은혜를 우리는 거의 잊고 산다. 한번 내습에 8만t의 흙먼지-15t 트럭 5천여대분-를 한반도에 쏟아놓는 황사 현상은 중국 서부의 사막 확대가 원인이고, 그 사막화의 주범은 방목으로 인한 삼림 고갈이었다. 이런 자연 재해 이외에 영리를 노린 인위적 훼손이 또 있다. 왕벚나무 3백 그루에 1백50만원어치의 얼음 목욕은 축제에서 나올 이익이 본전을 몇배나 뽑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섰기에 가능했으리라. 난초에 들려주는 음악과 벚나무에 뿌리는 얼음이 사람의 이해로는 다를 것이 없는데도, 무언가 다르다고 느낀다면 정녕 나의 강박증 탓인가?

우리가 나무에서 얻을 것은 그 혜택과 이익만이 아니다. 그것이 묵묵히 전하는 교훈이 있다. 일례로 줄기는 밝은 햇빛을 바라고 뿌리는 어두운 땅속을 비집는다. 그런데 막 싹이 돋은 흙 궤짝을 공중에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그 싹의 처지에서 흙은 위에 있고 하늘은 아래로 내려와서 실로 천지가 뒤바뀌게 된다. 이 격변에서 살아 남으려면 줄기는 아래로, 뿌리는 위로 진행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서 줄기는 위쪽 궤짝 흙으로 파고들고, 뿌리는 아래쪽 공기 속으로 뻗어내려가 결국 시들어 죽고 만다. 『식물기』(두레·1992)에서 파브르는 이 '자살'이 결코 착각이나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식물은 자신이 찾는 저 밑의 '진짜' 땅을 향해 뿌리를 허공으로 내려보내고, 머리 위의 '진짜' 하늘을 향해 줄기를 궤짝의 흙으로 들이민다는 것이다. 그 서글픈 고집이라니! 그래서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원칙에 생명을 바치는 순사(殉死)가 된다.

정치의 계절이다. 날로 변하는 시류에 올라타 말과 행동을 뒤집는 추한 모습들이 눈에 띈다. 어떤 흙이라도-머리 위의 가짜 흙조차-가리지 않는 겨우살이 같은 기생식물을 파브르는 '도둑'이라고 부르면서, 그 약삭빠른 재주에 사람들이 경의를 표하기는커녕 과수 피해 때문에 오히려 쫓아버린다고 썼다. 줄기는 하늘로 뻗고 뿌리는 땅으로 내리는 나무의 그 하찮은 노력이 무슨 대단한 훈장처럼 느껴지는 것은 정치의 계절을 틈탄 '도둑들'의 무도(舞蹈) 때문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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