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본토 출신 홍콩 2세들 노숙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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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는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홍콩 법원은 우리 문제를 다시 심리하라."

중국 출신의 홍콩인 2세들, 즉 '대륙 자녀들'이 함성을 지르며 거주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홍콩의 차터공원.

4일 오후 이 곳에서 만난 쉬유위(許友育·24)는 "3년이나 싸웠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1천여평의 공원에는 대륙 자녀 1천여명이 잠자리와 취사도구까지 갖춰놓고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공원 안팎에 좍 깔린 1백여명의 경찰은 앰뷸런스와 소방차를 대기시켜 놓았다.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공원 곳곳엔 '우리는 둥젠화(董建華·홍콩 행정장관)의 결단을 기다린다','엄마는 우리 집이 홍콩이라고 했다'고 쓴 현수막이 나부꼈다. 낯선 사람이 들어서면 '거주권 쟁취위원회'란 표찰을 단 청년들이 금세 따라붙었다.

이들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이 낳은 '슬픈 부산물'이다. 쉬유위는 1978년 중국 푸젠(福建)성에서 홍콩인 아빠와 중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86년 홍콩에 왔다. 그러나 처음에 홍콩 당국은 쉬유위 같은 대륙 자녀들의 거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법원에 집단 제소했고, 홍콩 종심(終審)법원(대법원에 해당)은 99년 "부모 중 한쪽이 영주권을 얻은 뒤 태어난 자녀들은 거주권을 갖는다"고 판결했다. 대륙 자녀들은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홍콩 당국이 반발하고 나섰다. 홍콩 당국은 "종심법원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앞으로 3~4년 내 홍콩에 수십만명의 중국인이 밀려들어 홍콩은 엉망이 될 것"이라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 재심을 요청했다. 홍콩 기본법은 종심법원의 판결을 전인대가 재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인대 법사위원회는 홍콩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부모 모두 영주권을 갖고 있으며, 합법적인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에게만 거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이 최종 심리결과였다. 이에 따라 대륙 자녀 7천여명은 졸지에 '거주민'에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홍콩 당국은 이미 "불법체류자들은 4월 1일 0시까지 홍콩을 떠나라"는 최후 통첩을 했다. 레지나 입(葉劉淑儀)보안국장은 "불법체류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경찰력을 동원한 강제추방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푸자후이(傅嘉慧) 거주권 쟁취위 대표는 "이번주 중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라며 "무슨 행동을 할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2000년 8월 대륙 자녀들이 이민국에 화염병을 던져 직원 2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친 불상사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렸다.

이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는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코 멜라 신부는 "가족들이 헤어지지 않도록 국제 여론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받아들인 홍콩의 고민은 오늘도 차터 공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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