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재개발 한 모퉁이 되살아나는 서소문성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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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 서소문동 일대에서 6백년 전 서울성곽과 오늘의 현대식 빌딩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인근 명지학원 빌딩의 신축과 관련, 새 건물과 기존의 동아건설 사이로 폭 8m짜리 새 길을 조성하면서 서울시가 문화재청에 자문해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소문 성곽은 조선초 숭례문(남대문)이 완공된 1396년 무렵 만들어졌으며, 1907년 일본 왕세자의 조선 방문에 즈음한 시가지 확대사업으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의 도심 재개발 바람에 거의 다 부서지고 현재는 길이 50m, 높이 1.5m 가량의 석축만 남았다.

사실 명지학원 빌딩 공사의 마무리를 위해 남서쪽 철제 울타리를 걷어냈을 때 상황은 심각했다. 남은 부분의 일부가 다시 훼손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인근 가게 주민들의 말은 제각각 엇갈려 확인이 불가능했다.

명지학원 빌딩 공사 현장 책임자를 찾아 문제의 장소를 둘러봤다. 그는 "훼손이라뇨…. 오히려 성곽의 복원을 위해 전문회사에 설계를 맡겨 놓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무래도 못미더웠다.

다시 걸음을 내부 공사로 먼지 자욱한 빌딩 13층의 현장 사무실로 옮겼다. 건설 본부장은 "거기는 이미 70년대 말 빌딩 공사로 훼손된 것이다. 돌은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창신동 일대 성곽 복원에 사용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남은 성곽 중 3m가량이 8m짜리 새 길에 걸려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서울시와 문화재청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돌은 지금 파괴되고 없는 자리로 옮기고 나머지 빈 공간은 새 돌로 연결해 복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울시가 여기에 가세할 움직임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담장을 헐 각오로 숭례문으로 이르는 샛길 2백m 가량에 서소문 성곽을 재현한다는 것. 성곽 공원 조성이 최종 목표인데, 석축 위 성가퀴(성 위에 낮게 쌓은 담)까지 새로 올릴지는 아직 미정이다. 6백년의 간극을 뛰어넘는 낡은 돌과 새 돌의 어울림이 기다려진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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