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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15명 중 9명이 왼손잡이, ‘좌파’ 많은 건 문제 안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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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16면

축구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11월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엔트리가 지난 5월 28일 발표됐다. 한국야구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연속 우승했다. 우리 멤버가 좋기도 했지만 라이벌 일본이 아시안게임에는 최정예 멤버를 내지 않기 때문이었다.

1차 엔트리 추린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한국야구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엔 실업팀 선수 위주로 구성된 일본에 패했다. 앞서 대만 대표팀에도 지면서 3위에 그쳤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엔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지기에 군 미필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 전력이 약했다.

이후 4년이 지났다. 한국야구는 ‘지켜야 할 것’이 많아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국으로서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은 당위에 가깝게 여겨진다. 대표팀 사령탑 조범현 KIA 감독은 “최강 전력을 꾸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대표팀 예비 명단엔 귀하디 귀하다는 왼손잡이가 넘쳐난다.

이용규(KIA)

90년대 ‘야구천재’로 통했던 이종범(40·KIA)은 왼손잡이다. 그러나 오른손타자다. 왼손으로 밥 먹고 글 쓰지만 야구 할 때 오른손으로 때리고 던진다. “어릴 적엔 당연히 오른손을 써야 하는 줄 알았다. 왼손 타자가 유리한 걸 몰랐다.” 지금보다 더 위대한 타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회한이 묻어난다.
 
류현진ㆍ김광현ㆍ추신수ㆍ구대성 등 수두룩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1차 엔트리 60명을 추렸다. 조범현 감독은 “왼손은 많은데 오른손이 귀하다. 좌우 균형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왼손잡이가 넘쳐서 문제인 적은 이전까지 없었다.

이번 엔트리 60명에는 8개 구단 주전 선수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투수들을 보면 오른손 15명, 왼손 9명이다. 사이드암(오른손) 투수는 3명. 수적으로 분명 우투수가 많다. 그러나 류현진(23·한화), 김광현(22·SK), 봉중근(30·LG), 양현종(22·KIA) 등 최종 엔트리에 들 만한 에이스급은 죄다 좌투수다. 오른손 투수 중에서는 윤석민(24·KIA) 정도만 안정권이다.

타자를 봐도 비슷하다. 외야수들이 ‘좌편향’이 심하다. 메이저리거 추신수(28·클리블랜드)를 비롯해 김현수(22)·이종욱(30·이상 두산), 이대형(27)·이진영(30·이상 LG), 이용규(25·KIA) 등이 왼손타자다. 오른손잡이는 2루수·3루수·유격수·포수 등 오른손으로 던져야 하는 포지션에서만 살아남았다.

국내 프로선수가 국가대표로 나선 최초의 대회가 98년이었다. 이른바 ‘드림팀’의 마운드 주축은 박찬호(37·LA 다저스), 서재응(33·뉴욕 메츠), 김병현(32·성균관대) 등 오른손 투수들이었다. 중심 타선은 박재홍(37·현대), 김동주(34·두산) 등 우타자로 꾸려졌고 이병규(36·LG), 강혁(36·현대 피닉스) 등 소수의 왼손잡이가 있었다.

야구대표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6년 제1회 WBC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위업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특급 왼손잡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시드니 올림픽 구대성(41·당시 한화), 베이징 올림픽 김광현, 제2회 WBC 봉중근 등 왼손 투수들은 특히 일본을 상대로 역투하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두 차례 올림픽과 제1회 WBC 일본전에서 결정적인 홈런포를 터뜨린 이승엽(34·요미우리)은 한국을 상징하는 좌타자다.

대표팀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조금씩 옮겨졌지만 주류는 여전히 오른손잡이 쪽이었다. 왼손잡이 야구선수들은 25% 정도로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고 양과 질에서 오른손잡이를 능가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지난해 WBC까지는 그랬다.

초등학생 이종범 아들, 좌타자로 한풀이
박찬호·김동주 등이 떠나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세대 교체되면서 대표팀에는 오른손 투수와 타자들이 급격히 줄었다. 현재 학생 야구선수들을 보면 이런 추세가 당분간 이어지거나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개선되면서 이종범처럼 왼손잡이가 오른손으로 야구하는 예가 없어졌다. 또 2004년부터 고교야구도 프로처럼 나무 방망이를 사용하도록 규정한 것도 큰 요인이다. 반발력이 큰 알루미늄 배트를 쓸 때는 어린 타자들도 장타를 곧잘 쳐냈지만 나무 배트를 쓰면서부터 홈런이 10경기당 1개꼴도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빠른 야구’가 강조됐다. 오른손잡이 가운데 발 빠른 타자들은 왼쪽 타석에 들어서 내야 안타를 노리고 있다. 최근 고교야구를 보면 왼손 타자들이 팀당 4~5명은 된다.

이종범의 장남 정후(12)군은 광주 서석초 6학년 야구선수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처럼 등번호 7번을 달고 유격수를 맡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반대로 왼쪽 타석에 들어선다.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서다.

기본적으로 야구는 왼손에 유리한 스포츠다. 투수의 70% 이상은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왼쪽 타석에 들어서면 투구를 더 잘 볼 수 있다. 또 왼쪽 타석에서는 오른쪽에서보다 타구를 때린 뒤 두 걸음 정도 1루에 먼저 도착할 수 있다. 소수의 좌타자가 다수의 우타자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다.

이 때문에 좌·우의 교배종인 우투좌타가 많이 나오고 있다. 프로에선 김현수가 대표적이다. 원래 오른손잡이인 그는 중학교 때부터 왼쪽 타석에서 쳤다. 구단마다 우투좌타 4~5명씩은 갖고 있다. 박용택(31)·오지환(20·이상 LG), 김원섭(32·KIA), 이승화(29)·손아섭(22·이상 롯데), 추승우(30·한화), 최형우(27·삼성), 이성열(26)·유재웅(31·이상 두산) 등이 ‘후천적 왼손잡이’들이다.

왼손 타자들이 많아지면 왼손 투수 또한 득세한다. 왼쪽 타석에서 오른손 투수의 공이 잘 보이지만 왼손 투수 공략은 어렵다. 이 때문에 구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좌투수의 효용은 크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프로에 스카우트될 때도 왼손잡이가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

김진철 LG 스카우트 팀장은 “훈련을 통해 타자는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투수는 어렵다. 왼손 투수의 희소성이 여전히 크다. 같은 구위를 갖고 있다면 왼손 투수를 선택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오른손 대 왼손 비율 7대3이 이상적
8개 구단 감독은 “뽑아도 뽑아도 왼손잡이는 부족하다”고 한다. 좌타자가 많아지면, 이들을 잡기 위한 좌투수가 더 많이 필요한 법이다. 공이 느려 터진, 마흔을 바라보는 왼손 투수들이 중간계투로 오랫동안 마운드를 지키고 있다.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 양준혁(41·삼성)도 왼손 타자 프리미엄으로 향후 2~3년은 더 뛸 수 있다.

우리보다 역사가 깊은 일본야구가 ‘좌편향’을 먼저 경험했다. 일본의 전체 인구에서 왼손잡이 비율이 우리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왼손잡이 야구선수는 더 많다. 시드니 올림픽부터 WBC까지 타선의 절반 정도가 좌타자였다. 지난해 WBC 결승전에서 한국 선발이 왼손 봉중근이었는데도 일본 라인업엔 스즈키 이치로(37·시애틀), 아오키 노리치카(28·야쿠르트),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7·요미우리), 이와무라 아키노리(31·탬파베이) 등이 포진했다. 이들은 죄다 우투좌타다. 일본에 인위적 좌타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시드니 올림픽 수석코치, 제1·2회 WBC 감독을 맡았던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은 “일본 왼손 타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자 왼손 투수도 늘어났고, 일본에선 다시 오른손 타자들이 귀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야구 전문가들은 오른손 대 왼손 선수 비율이 7 대 3이 돼야 이상적이라고 믿는다. 양과 질 모두에서 그래야 한다. 대표팀에서는 왼손잡이가 넘쳐나지만 구단별로 비중은 죄다 30% 이하다. 류현진·김광현·양현종 등이 함께 뛰는 건 이 시대에서나 가능한 우연이다. 김인식 위원장도 “지금은 왼쪽 위주지만 앞으로 조금씩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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