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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순간의 역사, 퓰리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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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김준술 기자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IN AFGHANISTAN)’ 2002년 피처사진 수상작. 2001년 9월 아프가니스탄의 마자리 샤리프 시(市), 뉴욕 타임스 제임스 힐 촬영. ‘비둘기들은 전쟁이 있을 땐 떠나고, 평화로울 땐 되돌아 온다’. 마자리 샤리프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고 한다. 원래 힐 기자는 탈레반의 격렬한 저항지였던 ‘콸라 장이’ 요새를 찍으러 왔다. 그러다 시 중심부의 아그라트 알리 사원 앞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는 노인을 봤다. 셔터를 눌렀다. 그의 카메라 렌즈에 잡힌 건 ‘전쟁의 바다’에 깃든 ‘작은 평화의 공간’이었다.

‘터져 나오는 기쁨(BURST OF JOY)’, 1974년 피처사진 수상작. 73년 3월 17일 미국 캐롤라이나 트래비스 공군기지, AP통신 슬라바 베더 촬영. 6년간 기다린 아버지가 살아 돌아왔다. 베트콩 포로였던 로버트 스텀 대령이 돌아오던 날 가족들이 두 팔을 뻗으며 달려 나왔다. 베더 기자는 카메라를 들어 환희의 순간을 생생히 포착했다.

‘코소보 탈출(FLEEING KOSOVO)’ 2000년 피처사진 수상작. 1999년 봄 알바니아 쿠케스, 워싱턴 포스트의 캐럴 구지 촬영. 99년 봄 독립을 요구하던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들은 세르비아 정부군을 피해 쿠케스의 난민 캠프로 향했다. 구지는 이들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피난민 샬라 가족이 캠프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순간을 포착했다. 두 살배기 아이를 건네는 가족의 손을 철조망도 막지 못했다. 구지는 “어떤 사진도 난민들이 겪은 고통과 지옥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베트콩 사형 집행(VIET CONG EXECUTION)’(왼쪽) 1969년 현장사진 수상작. 68년 2월 월남 사이공, AP통신 에드워드 T 애덤스 촬영. 사이공 거리에서 월남 장교 가족을 죽인 베트콩을 후송하던 2명의 월남 군인. 애덤스는 그들과 마주쳤다. 갑자기 다른 남자가 나타나 권총을 뽑았다. 격발 순간, 기자는 1.5m 거리에서 셔터를 눌렀다. 남자는 월남 경찰 책임자인 응우옌 응곡 로안이었다. 미국의 반전 운동가들은 이 사진을 과도한 전쟁의 상징물로 활용했다. 그러나 애덤스는 말한다. “당신이라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 자리에 서 보라. 그런 것이 바로 전쟁이다.”



칵테일 >> 낡은 벽장 속 역사를 부활시킨 그녀

퓰리처상 메달 뒷면(왼쪽), 앞면

1994년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벽장 바닥에 낡은 사진더미가 쌓여 있었다. 퓰리처상을 거머쥔 ‘시대의 걸작들’이었다. 큐레이터 시마 루빈은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바닥에 있지 않았던 다른 퓰리처상 사진들의 원판을 찾아내고 기자를 찾아 취재 뒷얘기를 들었다. 4년간 공을 들였다. 컬럼비아대 버틀러 도서관에 있는 퓰리처상 사진자료 보관소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그녀는 세계 곳곳에서 퓰리처 사진전을 기획하고 이끌어 왔다. 루빈은 “역사의 순간을 엮어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99년엔 터너 네트워크 텔레비전의 요청으로 ‘충격의 순간: 퓰리처상 수상 사진에 담긴 이야기들’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에미상·텔리상을 거머쥐었다.

퓰리처상은 ‘언론 노벨상’으로 불린다. 헝가리 태생의 미국 신문왕 조셉 퓰리처가 컬럼비아대에 200만 달러를 기부해 1917년 창설됐다. 사진 부문은 42년부터 시작됐다. 언론(14개)·문학(6개)·음악(1개) 부문에서 상을 준다. 퓰리처상의 상징인 금메달엔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앞)과 인쇄공(뒤)의 모습이 담겨 있 다. 이런 세기(世紀)의 사진들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 6월 22일부터 8월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순간의 역사, 역사의 순간-퓰리처상 사진전’이 열린다. 중앙일보·스톤브릿지캐피탈·YTN이 주최하고, 세계사에 반향을 일으킨 145점의 사진이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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