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英박물관에 웬 北선전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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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북한의 선전물이 전시돼 있다는 보도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더욱이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백20만파운드(약 23억원)를 지원해 만든 한국실에 이르는 통로에서 "祈願永生(기원영생)-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영생을 기원합니다" 같은 선전물을 만난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생생한 우리 국민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모든 박물관의 전시는 큐레이터에 의해 기획된다. 더구나 대영박물관은 철저하게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다. 또한 박물관과 국제교류재단은 한국실에 대한 이면계약에서 전시내용은 남북한을 구별하지 않은 채 'Korea'로, 전시실은 영구적으로 운영한다는 것만 명시하고 있다. 문제의 선전물이 걸린 로비는 2000년 11월 개관 당시 교류재단측이 '가능하면 한반도 관련물을 전시해달라'고 부탁한 정도다. 따라서 "정치적 의도 없이 북한의 현대미술을 보여준다는 뜻"이라는 박물관측의 설명을 우리로선 납득할 수 없지만 박물관측의 잘못을 물을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주영 한국대사관과 국제교류재단측의 무신경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9월 한국박물관협회 초청으로 서울에 온 로버트 앤더슨 대영박물관장이 6개월 전 북한에서 현대미술 작품 30여점을 구입, 11월부터 한국관 로비에 전시하겠다고 밝혔는데도 국제교류재단은 지난해 5월을 끝으로 단 한번도 한국실을 점검해보지 않았다.

주영대사관은 더욱 문제다. 지난주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제보를 받아 재단측이 유감서한을 작성하기까지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이 일을 몰랐거나,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문화가 대사관 업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연 6백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대영박물관인 만큼 한국실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문화외교정책의 강화를 위해 외환위기 당시 통합폐지했던 주영대사관의 문화관직을 되살릴 것을 제안한다. 문화는 나라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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