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청계고가 보수 눈치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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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하루 12만대의 차량이 다니는 청계고가도로를 교체하는 공사를 둘러싸고 서울시가 딜레마에 빠졌다.

지은 지 30년이 지나 교체 공사가 시급한 형편이지만 시장 선거에 나선 여야 후보들이 '청계고가 철거-청계천 복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당초 30t 무게를 떠받치도록 설계된 청계고가는 현재 12t밖에 견디지 못할 만큼 노후됐다.

이에 따라 청소차나 유조차·화물차와 10인승을 넘는 승합차는 지난해 4월부터 통행이 전면 금지되고, 주한미군은 청계고가를 아예 '위험 지역'으로 분류해 접근하지 않고 있다.

서둘러 청계고가 교체 공사를 추진해온 서울시는 "오는 5월께 용역 결과가 나오면 상판만 교체할지, 교각까지 포함해 청계고가 전체를 바꿀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판만 바꿀 경우 공사비는 8백억원, 교각까지 뜯어내면 공사기간 3년에 1천억원이 소요된다. 이를 위해 시는 우선 7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추가 비용은 추경예산으로 조달키로 했다.

올해 초 "당장 교체해야 한다"는 조기 착공론과 "월드컵 이후로 미루자"는 연기론이 맞서자 고건(高建)서울시장은 결국 월드컵이 끝나는 6월에 청계고가 공사에 착공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시장 선거에 나선 후보들(민주당 이상수, 한나라당 이명박 전 의원)이 '청계천 복원'을 주장하면서 서울시는 난감해졌다.

시 고위간부는 "청계고가 보수 비용으로 매년 10억~20억원이 들어간다"며 "교체 공사가 시급하지만 차기 시장에게 밉보일까 눈치만 살피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한 후보중 한 명이 서울시장에 당선하면 공사 보류는 물론 고가도로 자체를 아예 뜯어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차기 시장이 청계천 복원을 결정한다 해도 실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청계고가는 한동안 교체공사 없이 서 있어야 할 것"이라며 "안전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난감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통·건설 전문가들은 "후보들의 '청계천 복원'은 아직 구상단계에 불과하고 서울시 1년 예산과 맞먹는 12조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라며 "교통 영향평가 등 아무런 대책도 세워놓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시급한 교체공사가 헛바퀴 돌고 있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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