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반한 한국 <6> 토니 휠러 ‘론리 플래닛’ 회장의 판문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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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 양쪽서 볼 수 있었던 난 행운아

우리가 어떤 곳을 볼 때 양쪽 모두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 한 방향 또는 다른 방향, 위 또는 아래, 동쪽 또는 서쪽, 이렇게 한쪽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북한에서는 남쪽만, 남한에서는 북쪽만 볼 수 있듯이, 대다수 사람은 양쪽의 시각으로 양쪽 모두를 바라보지 못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 지대(DMZ)를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평양으로부터 판문점을 방문해 남한 땅을 바라봤고, 반대로 남한으로부터 판문점을 들어가 북한을 바라봤다.

DMZ 안의 판문점은 하나의 방 안에 남쪽으로 난 문과 북쪽으로 난 문이 있었다. 남쪽 문은 남한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고, 북쪽 문은 북한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다. 문 두 개는 몇 발짝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이 문에 적용되는 규정은 매우 엄격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오랜 세월 여행을 다니다 보니 이상한 국경과 분단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1972년에는 파키스탄에서 인도 국경을 건넌 적이 있다. 당시 두 나라 사이의 다툼은 격렬했다. 분쟁 끝에 방글라데시라는 신생국이 탄생했을 정도니 말이다. 내가 방문하기 1년 전쯤 두 나라의 분쟁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1주일에 세 시간 정도만 국경이 개방되고 있었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두 나라 국경은 야간에 굳게 닫혀 있다.

1991년엔 독일인 친구와 베를린 장벽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독일을 양쪽으로 갈라놓았던 장벽이 사라진 지 24개월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장벽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몇 개월 전만 해도 이 장벽은, 그곳에 영원히 서 있을 것처럼 너무나도 견고했다. 사실, 내 독일인 친구는 분단의 역사가 막을 내리기 하루 전에도 이와 같은 상태가 영원히 지속할 줄 알았다고 소회를 털어놓은 바 있다.

서울에서 DMZ까지 여정 동안 내 머릿속엔 베를린 장벽이 들어 있었다. 내가 보기엔 한국의 DMZ 역시 인위적인 장벽에 불과했다. 양쪽 사람은 본래 동일 민족이었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최근까지 같은 역사를 공유해 왔다.

초현실적인 북쪽 DMZ … 과연 실재하는 곳인가

DMZ 북쪽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영화 세트장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 하나하나가 초현실적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현실을 경험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지만 DMZ 북쪽 땅이 실재한다고 믿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북한 땅에서 받았던 비현실적인 인상은 DMZ에서 극에 달했다. 하나 현실은 간단했다. 남과 북의 대표적인 두 도시가 겨우 200㎞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분단은 그리 확고하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으로 보였다. 두 개의 한국이 전혀 동떨어진 별개의 세상이란 사실은, 내가 믿는 진실이 아니다. 완전히 사라져 이젠 장벽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든 베를린 장벽 모양, DMZ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DMZ가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믿기 힘든 날이 올 것이다.

정리=손민호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 해 위원회 공동기획

토니 휠러

1946년 영국 출생. 론리 플래닛 출판사 창립자. 72년 부인 모린과 함께 1년 계획으로 아시아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마치고서 그들 부부 수중에 남아있었던 건 단돈 27센트. 부부는 여행담을 담아 책을 낸다. 전 세계 여행자의 교과서로 통하는 ‘론리 플래닛 시리즈’의 시작이다. 세월이 흘러 2004년 현재 출판사 론리 플래닛은 118개 나라에 관한 여행 가이드 650여 권을 판매하고 있고,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은 연간 700만 부 이상 팔린다. 전 세계 영어 여행서 시장에서 25%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지금도 휠러 부부는 1년 중 절반을 여행으로 보낸다. 그의 인생 역정을 정리한 『론리 플래닛 스토리』와 북한 여행기를 담은 『나쁜 나라들』이 국내에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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