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사업 수주 기업 기부금 못내게" 日 정치자금 규제 강화 추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의 고질병인 돈정치가 수술대에 올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27일 "이번 정기국회에서 기업의 정치헌금을 규제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배경=최근 자민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탈당한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가토 고이치(加藤紘一)의원과 의원직을 사퇴한 쓰지모토 기요미(?元淸美) 전 사민당 정책심의의장 등 여야 유력정치인들의 추문에는 모두 돈문제가 깔려 있었다.

특히 27일에는 집권 자민당의 간사장을 지냈고 한때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던 거물 가토 의원이 정치헌금 9천만엔을 개인 용도로 유용한 사실이 밝혀져 고이즈미의 분노를 샀다.

고이즈미 총리는 무엇보다 국민의 정치불신이 구조개혁 좌절과 정권 몰락으로 이어질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편법 정치자금=일본에선 지난해부터 정치인이 개인적으로 헌금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곳곳에 뚫린 '구멍'이다. 자금관리단체나 지구당(정당지부)을 통해 기부금을 받는 것은 합법적이기 때문에 의원들은 이 창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기업이 공공사업을 수주할 경우 특정 의원에게 연간 1백50만엔까지 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도 문제다. 의원들이 공공사업에 개입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들이 정부정책에 관여, 특정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유도한 후 헌금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본 정부의 법안·예산안은 집권 자민당의 부회(部會)·정책조정심의회·총무회의 승인을 모두 받지 못하면 국회로 갈 수 없다.

여기서 이권에 개입할 길이 생기는 것이다. 야당이나 여당 초선의원의 경우 쓰지모토처럼 '유령비서'를 임명한 뒤 급여를 받아내기도 한다.

◇전망=고이즈미 총리는 우선 알선이득처벌법·정치자금규정법부터 개정할 방침이다. 의원 비서가 이권에 개입해 돈을 받는 행위는 우선적으로 처벌받을 전망이다. 공공사업을 수주한 기업의 정치헌금 행위도 규제받는다.

문제는 의원들이 자신의 손발을 묶을 법안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반대할 경우 고이즈미 총리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