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굵은 입자 잉크에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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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2면

이젠 전영록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는 제목과 가사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사랑을 잘못 쓰면 지워야하니까' 연필로 쓰라는 게 노래의 주장인데, 지우개로 지워지는 볼펜이 개발됐으니 굳이 연필로 쓸 까닭이 없다.

지워지는 볼펜을 개발한 곳은 문구 전문회사 모나미.<본지 3월 18일자 29면> 일본의 빠이롯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다. 모나미측은"빠이롯트 것보다 색상이 훨씬 진하고 선명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4월부터 미국·영국·프랑스 등지에 수출을 시작하고 올 2학기부터는 국내에도 출시된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볼펜은 잉크 입자가 작아 글씨를 쓰면 잉크가 종이의 섬유질 사이로 먹어들어갑니다. 반면 연필은 흑연 가루가 굵어 그냥 종이 위에 얹힌 상태가 되지요. 이 흑연가루를 고무로 묻혀내는 것이 지우는 겁니다. 따라서 흑연처럼 굵은 잉크 입자를 만들면 지워지는 볼펜을 만들 수 있지요."

강성초(47) 모나미 연구소장의 설명이다.

'굵은 잉크 입자만 만들면 된다'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입자가 굵으면 보통 잉크액 속에서 가라앉게 마련인데 이런 잉크는 쓸 수 없다. 또 글씨를 쓴 뒤 손으로 문질러도 번지지 않을 정도로 잉크 입자가 종이에 탄탄하게 붙어 있으면서도, 지우개에는 잘 묻어나야 한다. 그래야 지워지는 것이다. 그밖에도 ▶덥거나 추워도 지나치게 끈적끈적해지지 않아야 하며▶인체에 독성이 없어야 하는 등 여러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처음 만든 잉크는 영상 50도에서 1주일 만에 엉겨 굳어 버렸다. 영상 50도에서 90일간, 영하 20도에서 90일간 버텨야 한다는 기준에는 턱도 없었다.

이순석(34) 과장은 "1백10번째로 만든 잉크가 지난해 말 시험에 통과했다"면서 "개발에 나선지 1년 만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개발한 잉크 입자는 지름이 0.01㎜로 보통 잉크의 20배였다.

강성초 소장은 "지금까지 검정·파랑·빨강·녹색 네가지 잉크 개발에 성공했다"면서 "우선 보다 많은 색깔의 지워지는 잉크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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