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제2부 薔薇戰爭 제2장 揚州夢記 : "내 신세가 夏爐冬扇 되었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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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그러나 나이 삼십에 무령군의 군중소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장보고는 곧 중대한 기로에 접하게 되었다. 즉, 이사도의 평로치청이 완전히 진압된 다음해 정월, 황제 헌종이 또다시 환관에 의해서 암살되었던 것이다.

병든 아버지를 시해하고 환관 구문진(俱文珍)에 옹립되어 황제에 올랐던 헌종은 그 자신도 후사 다툼으로 환관 진홍지(陳弘志) 등에게 암살되었다. 헌종이 죽자 그의 아들 환(恒)이 왕위에 올라 목종(穆宗)이 되었는데, 그는 고대사회에서 봉건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명군으로 번진세력을 토벌하여 왕권을 확립하려는 아버지와는 달리 번진세력에 대해서 온건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또다시 노용군(盧龍軍)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사도의 반란 때 큰 공을 세웠던 전홍정이 암살됨으로써 전국은 다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당 조정에 반항하던 가장 강성한 번진을 가리켜 하북삼진(河北三鎭)이라 하였다. 비록 가장 큰 세력인 평로치청이 제압되었다고는 하지만 위박(魏博)과 성덕(成德)의 절도사들이 연이어 조정의 무능을 성토하며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헌종과는 달리 날뛰는 번진세력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던 황제 목종에 대해 당시 20세의 열혈청년이었던 두목은 크게 실망하고 다음과 같은 우국시를 지었다.

"금하의 가을 오랑캐의 노래 소리에

구름 밖의 새들이 놀라 슬피 울며 사방으로 흩어지네.

건장궁은 달 밝은데 외로운 기러기 지나가고

장문에 등불 어두운데 기러기 울음소리 들리네.

오랑캐 말 어지러이 날뛰는데

봄바람은 어찌도 불고만 있는가.

소상에 인적 드물다고 싫어말지니.

물에는 고기가 많고, 언덕에는 딸기가 무성하도다."

우국시에 나오는 '소상'은 호남성의 동정호 남쪽에 있는 소수와 상수를 이르는 말로 부근에 유명한 소상팔경이 있어 경치가 수려한 곳이었다.

두목의 우국시처럼 황제 목종은 '오랑캐들의 말이 어지러이 날뛰고 있는데(須知胡騎紛紛在)'도 줄곧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사도의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서 동원하였던 수십만의 대군에 대해서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헌종은 이사도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서 황제의 칙령으로 토벌령을 선포하는 한편 전국에 걸쳐있는 여러 절도사들과 귀순한 번진들을 수장으로 내세워 수십만의 연합관군을 편성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정이 갖고 있던 최대의 물자 저장고였던 하음전운원(河陰轉運院)의 창고가 이사도에 의해서 완전히 불타버리자 이 막대한 관군을 먹여 살릴 양곡을 조달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많은 군사들을 제대시켜 관군의 숫자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장보고와 정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중소장으로까지 진급한 상태에서 계속 군문에 남느냐,아니면 제대하여 새 생활을 모색하느냐에 대한 중대한 기로에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랜 심사숙고 끝에 장보고는 결심하고 정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군문을 떠나겠다.옛말에 이르기를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 하였다.이는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라는 뜻으로 철이 지나면 화로와 부채는 쓸모 없는 물건이 되어 버린다는 뜻이다.너와 나는 때가 와서 큰 무공을 세워 당나라의 군중소장이 되었지만 이제는 철이 지나서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화로와 부채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추지선(秋之扇)이라 하여서 '가을이 되어 쓸모 없게 된 부채'란 말도 있지 않느냐.그러니 나는 이 기회에 군문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겠느냐."

형 장보고의 질문에 정년이 대답하였다.

"형님의 말씀대로 형님이 화로이고, 아우인 내가 부채가 되어서 쓸모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참고 기다리면 겨울은 또다시 돌아오고, 여름은 또다시 돌아올 것이오. 형님이 아시다시피 번진의 반란들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지 않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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