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훌리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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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85년 5월 29일은 축구 역사상 최악의 날로 기억될 만하다.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리버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과격한 영국팬 수천명이 관중석을 메워 경기 전부터 분위기가 험악했다.

이들은 결국 경기 도중 이탈리아 응원단으로 돌진, 39명이 압사하는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70년대부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그라운드의 난동꾼 '훌리건(hooligan)'의 존재를 전세계인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훌리건이 등장한 것은 1백여년 전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 어원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說)만 있을 뿐이다.

우선 영국의 한 조간신문이 1898년 런던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켜 체포된 젊은이들을 가리켜 이같이 불렀으며, 같은 해 런던 경시청의 보고서에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으로는 19세기 말 런던에서 악명을 떨쳤던 아일랜드 출신의 부랑아 '패트릭 훌리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당시 한 갱단의 이름인 훌리 갱(hooley's gang)을 잘못 발음해 훌리건이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슬라브 어원설에 따르면 19세기 말 러시아 등 슬라브어권 국가들에 비슷한 단어가 있었는데, 이 단어가 영국 등 서유럽으로 전해지면서 훌리건으로 불려졌다고도 한다.

헤이젤 스타디움의 참사 이후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훌리건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면서 비폭력 관전문화의 정착을 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덴마크의 '롤리건'과 스코틀랜드의 '울트라스'의 경우 상대팀 국가가 울려퍼지면 조용히 경의를 표할 만큼 성숙한 관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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