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권(1949~) '샘' 전문
꾸정물 속을 흘러간 샘물
세상은
꾸정물 그대로지만
샘물로
꾸정물에 묵화를 치는 일
샘물은 흘러서 기꺼이 구정물도 되고 폐수도 된다. 그래도 샘물은 주저함 없이 구정물로 들어간다. 세상은 온통 구정물이지만, 그래도 이만큼 살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맑은 물이 있기 때문이다. 물은 스스로 오염되고 파괴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순수한 본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땅에 스며들거나 기화되면 맑음은 바로 회복된다. 오염되고 파괴되는 것은 물과 그것을 이용하는 세상과의 관계일 뿐.
김기택<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