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지역주의를 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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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여론조사 예측을 뛰어넘는 파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16일 광주 염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세번째 경선에서 노무현(盧武鉉)후보가 1등을 차지한 것은 盧캠프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큰 이변이었다.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盧후보측은 "개표 직전까지도 2,3위권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환호했다.

盧후보가 지난 울산 경선(10일)에서 1위로 올라섰을 때만 해도 당 안팎에선 "좀더 두고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했으나 이번 광주 경선 결과로 '노무현 대안론'은 확고한 실체를 갖게 됐다.

호남 정치권의 핵심부에서 영남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는 상징성도 간단치 않다. 이같은 광주의 분위기가 전남·북으로 확산할 경우 '호남+충청'연합을 필승 카드로 구상하던 이인제(李仁濟)후보의 경선 전략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고위 당직자는 "'이인제 대세론'의 진원지가 바로 광주였다"며 "오늘의 결과가 향후 경선 레이스에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아직 속단은 이르다. 남은 경선 일정을 따져보면 앞으로도 몇번의 반전이 불가피하다. 이제까지 투표한 것은 전체 선거인단의 5.9%에 불과하다.

당장 17일 치러지는 대전 경선에선 지역 연고가 있는 李후보가 다른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종합 1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이어지는 충남(23일)·강원(24일)경선에서도 李후보는 순항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곧바로 경남(30일)·대구(4월 5일)·경북(4월 7일) 등 盧후보의 연고지인 영남권으로 이어진다. 대의원 수도 영남권이 훨씬 많다. 결국 최대 승부처인 경기(4월 21일)·서울(4월 27일) 경선이 치러지기 전까진 결과를 가늠키 어려운 실정이다. 앞으로 盧후보에 대한 타 후보들의 견제도 훨씬 심해질 게 뻔하다.

그럼에도 노무현 돌풍이 경선 초반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李후보측은 "향후 중부 이북 경선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워 개혁과 경제 재도약, 국민시대 개막이란 이인제 후보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하게 대의원들에게 전달하겠다"(田溶鶴의원)고 다짐했다.

이날 경선의 또 하나의 이변은 여론 조사에서 1등이 예측됐던 한화갑(韓和甲)후보가 큰 표차로 3등에 그쳐 3강(强)구도 형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韓후보는 광주지역 지구당 위원장들을 집중 공략하며 조직표 확보를 노렸으나 결국 "호남 후보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이길 수 없다"는 밑바닥 인식을 돌리는데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당 관계자는 "韓후보의 조직표가 무너지면서 盧후보 쪽으로 표 쏠림 현상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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