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길은 먼데 날은 저물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10보 (169~188)]
黑. 송태곤 7단 白.왕시 5단

168이 한발 늦어 결정타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가뜩이나 갈 길이 바쁜 흑엔 이 수가 참으로 한스럽기만 하다.

176으로 한 칸 뛰어 왼쪽 대마를 위협하는 것은 예정된 코스. 흑은 부득이 177부터 머리를 내밀며 삶을 모색한다. 그 사이 백은 아주 조금씩 이득을 챙겨간다. 백에 떨어질 이런 이득은 이미 고수들의 계산서에 들어있고 '백 약간 우세'란 결론도 그래서 나왔던 것이기에 전혀 새로운 변화는 아니다.

182로 밀었을 때 송태곤7단에게도 최후의 기회가 있었다. '참고도'처럼 흑 1을 하나 선수해 두고 즉각 3으로 손을 돌리는 것이다. A로 받아주면 이득이다. 안 받아도 그 자체로 커서 미세한 끝내기 승부로 몰고갈 수 있었다. 왼쪽 대마는 백 4 포위해도 7까지 산다.

"그런 점에서 흑 183은 최후의 패착이었다"고 박영훈9단은 말한다. 184가 놓이면서 백은 3집반 정도의 우세를 거의 굳혔다.

초반이나 중반이라면 3집반 차이는 별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갈 길은 먼데 날은 이미 저물어 3집반이 남산만큼 커보인다.

송태곤은 이후 80여수를 더 분투하며 힘겨운 추격전을 전개했으나 차이는 3집반에서 2집반으로 딱 한집이 줄었을 뿐이다. 바둑도 싱싱한 초반에는 대여섯집도 쉽게 오고 간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느 지점에 이르면 마치 인생의 노년기처럼 마음만 앞설 뿐 판세는 요지부동이다.

277수에 끝나 백 2집반승. 188수 이하는 총보로 미룬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