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 바꿔입는 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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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70년대 말 '축구황제' 펠레가 뛰던 미국의 코스모스축구클럽팀이 한국을 방문해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벌였다. 당시 한국팀의 주 공격수는 '한국의 뮐러'로 불리던 이태호 현 대전 시티즌 감독. 이씨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미국 선수와 땀에 젖은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최근 제작된 한국 대표팀 유니폼은 첨단소재로 만들어진 데다 무게도 가볍지만 당시만 해도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코스모스팀 유니폼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뒤떨어졌다. 이씨는 "유니폼이 너무 가벼워 신기할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유니폼을 바꿔 입는 전통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국내에선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니폼 교환은 야구나 농구 등 다른 종목에서는 볼 수 없는 축구 경기만의 전통이다.격렬한 경기를 벌이고 난 뒤 서로 땀에 젖은 유니폼을 교환함으로써 우정과 친밀함을 나타내기 위해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80년대 초만해도 여분의 유니폼이 없어 감독이 유니폼을 바꿔입지 말도록 지시를 내리는 일이 잦았다. 요즘엔 큰 대회나 장기간의 전지훈련을 갈 경우엔 전담 관리자가 선수별로 최소한 5~6벌의 유니폼을 준비해 간다. 후원업체가 용품 사용계약을 하고 선수들의 유니폼을 제작하면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외국 선수들과 바꾼 유니폼은 통상 선수 개인이 갖는다. 대부분 기념으로 집에 보관하거나 세탁한 뒤 동료 선수나 친지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한다. 국내 선수 가운데엔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과 이태호 감독이 현역 시절 외국 선수들의 유니폼을 수십벌씩 보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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