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변화중<3·끝>정책 정당으로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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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야를 불문하고 양당 모두 내분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바야흐로 선거가 멀지 않았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오동잎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시구처럼, 자신을 과시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정치인의 출현으로 선거의 철이 돌아왔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이러한 현상은 정계개편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로 포장되고 있지만 정치식객들의 이합집산에 다름 아니다.

이합집산 현상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정당이 부초(浮草)처럼 국민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빈번한 이동으로 구성원이 끊임없이 바뀜으로써 정당으로서는 정체성을 형성할 겨를이 없었고, 국민의 입장에서도 정당일체감을 가질 하등의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증폭돼 정당이 국민 속에 뿌리내리기 어려운 풍토가 생겨 정당정치 황폐화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책정당으로의 변신을 위한 여건의 정비와 아울러 정당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

정책정당으로서 정당간 정책대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정책의 정치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주요 정책이 당리당략에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정당의 개입을 봉쇄한 채 행정관료에 의해 입안돼 왔다. 정책의 행정화·비정치화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루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안되는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일 뿐이다. 정책에 대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독재의 논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의 입안과 결정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뤄지도록 정당의 영역으로 넘기고, 행정부는 그 정치적 결정을 집행하는 선에서 그치게 해야 한다.

아울러 규제를 대폭 풀어 정치인과 유권자가 빈번하게 접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치시장에 유익한 정보가 흘러 넘치도록 하고, 이것이 정치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래야만 정당도 정책개발에 주력하고 정당 간의 대결도 탁상공론이 아닌 정책대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해 당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이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함으로써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당에 맡기면 당파적인 정책결정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선거를 통해 그러한 정당이나 정치인은 언제든지 퇴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될 시점에 이르렀다.

유권자로서도 정당이 정치적인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고 이에 입각한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에만 지역감정이나 연고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정책과 이념의 동질성을 중심으로 한 정당개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정책정당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품성을 빌미로 이 당 저 당으로 옮겨다니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 정책 제시와 아울러 당내 민주화를 이루는 것 또한 정치인의 이합집산을 막는 지름길이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리더십을 확립하고 민주적 방식으로 당론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토가 마련되지 않는 한 주류는 끝없이 기득권에 안주하려 할 것이고, 비주류는 언제고 떠날 명분과 구실을 찾으려 해 당의 안정과 발전을 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류로 하여금 독선에 빠지지 않게 하고,비주류나 경선 패배자로 하여금 당을 떠날 명분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당 민주화는 정착돼야 한다.

이와 같이 정책의 정치화, 정당의 민주화가 이뤄진다면 진정한 의미의 정계개편이 실현되고, 이합집산으로 인한 정국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빗댄 명분 없는 이합집산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퇴출되는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스스로의 정치생명을 끊는 자살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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