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발견된 '신안 유물선' 700년 전 모습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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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된 지 29년 만에 복원을 마치고 공개되는 신안선과 전체적인 구조.형태를 알 수 있도록 꾸민 모형(위쪽 사진). 신안선에는 원대 도자기 2만661점(고려청자 7점 포함) 외에도 청동양각도철문관이병 등 금속 유물 729점과 석제품 43점, 목제 유물 및 기타 574점, 동전 28t, 원목 상태의 자단 1017점이 실려 있었다. 오른쪽은 신안선의 내부 모형도. 목포=신동연 기자

1975년 전남 신안 앞바다 속에서 도자기 등 원.고려.일본의 각종 유물 2만여점과 함께 발견돼 세계를 놀라게 했던 14세기 무역선인 '신안선'이 29년 만에 완전 복원돼 14일 공개된다.

문화재청 국립 해양유물전시관(관장 유마리)이 10주년 개관일에 맞춰 공개한 신안선은 원래 길이 34m, 폭 11m, 깊이 3.8m 크기의 200t급 범선으로, 발굴 인양된 우현(배의 오른쪽) 부분(길이 28.4m, 폭 6.6m)은 제 모습대로 복원하고 나머지 없어진 부분은 철골로 형체와 규모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신안선은 발견 당시 오른쪽으로 15도가량 누워 개펄에 묻혀 있었는데, 침몰된 뒤 700여년 동안 물살과 해충의 영향으로 배의 왼쪽 등 나머지 부분은 흔적조차 없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개펄 속에 묻힌 우현 부분은 14단 일부까지 남아 있어 배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선체의 발굴 인양은 81년 시작해 83년 10월 마무리됐다. 깊이 20m의 바다 속에서 잠수부가 하루에 고작 45분씩 작업해 건져 올린 배 조각은 용골을 비롯한 몸체 497조각과 외판 등의 보호를 위해 덧붙였던 포판재 223조각 등 모두 720조각. 작업 여건상 사등분해 건져 올렸다.

시간과의 싸움이 벌어진 건 이때부터. 대기에 노출되면서 산화.변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민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고 이물질을 제거해야 했다.

이어 나무 속의 물기를 빼내고 특수물질(PEG)을 투입해 안정화와 강도를 높인 뒤 건조 처리를 했다. 약품 처리의 경우 농도를 6개월마다 5%씩 75%까지 올려야 하기 때문에 장장 90개월이나 걸리는 작업이다 보니 본격적인 복원은 94년부터 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3년여에 걸쳐 조각을 일일이 실측해 5분의 1 크기와 10분의 1 크기로 모형을 만드는 등 복원을 위한 기술적 검토를 마쳤다. 외국의 고선 복원 사례의 장단점을 비교해 잔존한 부분만 복원하고 나머지 유실된 부분은 배의 윤곽을 알 수 있도록 프레임을 연장하기로 원칙을 세운 뒤 경화 처리가 끝난 조각들을 배를 만들 때처럼 하나하나 맞춰 나갔다. 최종적으로 프레임을 만드는 데만 2억5000만원의 비용과 1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순수 복원에만 무려 11년이 걸린 대역사였다.

문환석 해양유물전시관 학예연구실장은 "신안선은 우리나라 수중 고고학의 장을 열게 한 그야말로 보물"이라며 "무엇보다 거의 한 세대를 거쳐 순수 우리 기술과 노력으로 발굴에서 복원까지 마무리한 것은 국가적 쾌거"라고 말했다.

해양유물전시관은 신안에 이어 완도(84년).벽파리(92년).달리도(95년).도리포(95~96년).비안도(2002~2003년).십이동파도(2003~2004년)의 해저유물도 발굴했는데, 비안도 2차 발굴부터는 해군 등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작업해 오고 있다.

유물전시관은 신안선 완전 복원을 기념하기 위해 14일 고선박 보존과 복원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철한 해양유물전시관 학예연구사가 '신안선 복원 연구'를 발표하는 것을 비롯, 헝가리.일본.중국의 전문가들이 참가해 주제발표를 한다.

목포=이만훈 기자 <mhlee@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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