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3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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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은 봄소식도 e-메일로 온다. 남도의 봄바람을 쐬고 왔다는 지인(知人)이 봉우리 방싯한 청매화(靑梅花) 한 떨기를 사진으로 보내왔다. 몇마디 인사에 덧붙인 시구들은 매화의 지조와 절개,그리고 찬바람을 가르는 그윽한 암향(暗香)까지 전해오는 듯하다.

"아프게 겨울을 비집고/봄을 점화(點火)한 매화/동트는 아침 앞에/혼자서 피어있네/선구(先驅)는 외로운 길/도리어 총명이 설워라."(이호우,'매화')

매화를 식물학적으로 분류(장미과 낙엽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매화가 동양적 정신세계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각별하기에. 매화는 가장 먼저 피는 선구의 꽃,꽃샘 추위에 눈을 뒤집어 쓰고도 향(香)을 잃지않는 절개의 꽃, 봄을 알리는 희망의 꽃이다.

이호우의 시조가 봄을 알리는 선구자에게 바치는 찬사라면, 이육사의 매화는 조국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으려는 희망을 상징한다."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광야' 중)

그리고 매화는 가냘프고 청순한 여인의 은유다. 특히 홍매화(紅梅花)는 감추듯 드러나는 여인의 열정을 대신한다. 그러나 결코 천박해서는 안된다."그윽한 향 품고/제철 꽃밭 마다하여/눈속에 만발함은/어느 아낙네의 매운 넋이야."(노천명의 '설중매' 중)

지인이 보내온 청매화는 매화 중에서도 귀한 매화라 더 반가웠다. 청매화는 매화의 꽃받침이 녹색이라 녹악(綠?)이라고도 하는데, 꽃받침의 푸른 빛이 하얀 홑꽃잎으로 배어나와 청매화라 불린다.

대부분의 매화는 흰색(백매화)이거나 붉은색(홍매화)이다. 백매화는 특히 눈이나 얼음과 같은 하얀 겨울 이미지와 잘 어울려 꼿꼿한 선비들의 기개를 상징한다.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 단속사(斷俗寺)에 있는 국내 최고령(6백수십년) 매화나무가 가장 많이 알려진 백매화다. 여성을 상징하는 홍매화는 백매화보다 조금 늦게 피는데, 경남 양산 통도사 큰 절 경내에 있는 영각(靈閣)앞 홍매화가 선명한 빛깔로 유명하다.

매화의 상징성은 일찍 핀다는 데서 비롯된다.2월 초 제주도에서 피기 시작한 매화는 3월 중순께 남부 내륙지방에 상륙하고,4월 초면 서울까지 올라온다. 다음주면 벚꽃이 상륙해 매화를 쫓아 북상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바쁘다.

오병상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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