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분야서 정부·기업에 영향력 "族의원 정치 척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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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일본 정계의 오랜 관행인 '족(族)의원 정치'의 수술에 착수했다.

자민당 내 '국가전략본부'는 13일 족의원의 행정간섭을 막고, 관료주도 행정을 배제하며, 당 아닌 총리가 정책을 주도한다는 이른바 '고이즈미 3원칙'을 골자로 한 정책결정 시스템 개혁안을 고이즈미 총리에게 제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가전략본부의 본부장을 겸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금 달라지지 않으면 무너진다"며 개혁안을 전폭 수용할 뜻을 밝혔다.

◇총리 권한 강화가 목표=개혁안에 따르면 관료가 정치인과 접촉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행정부처에서는 정치인 출신 관료인 장관·부장관·정무관만이 정치인 또는 정당과 접촉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정치인을 만나거나 청탁을 받은 관료는 사전·사후에 경위·일정 등을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개혁안은 정부가 법안 등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에 당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 기존 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정책조정장관을 신설,당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정부·여당간 협의(당정협의)가 있지만 일본은 협의수준을 넘어 당의 입김이 지나치게 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덕분에 특정 분야에 밝은 족의원들이 '설칠' 공간이 생긴 것이다.

개혁안은 정책결정 과정을 내각으로 일원화해 족의원의 정책간섭 소지를 줄이고,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명백히 했다. 이밖에 각종 선거에서 예비선거제를 도입하고, 파벌·서열에 따른 인사관행을 타파하도록 했다.

◇잘 될까=기성 정치인의 반발 등 난관이 적지 않다.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전 정조회장은 벌써부터 "개혁안에 절대로 찬성할 수 없다"고 공언했다. 족의원들은 그동안 도로공단 민영화 등 정부의 개혁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어왔다. 이들의 반발에 밀려 개혁안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경우 고이즈미 정권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4일 개혁안에 대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에서 이념에 기초한 국가전략형 정치로 바뀌어 통치구조에 대변혁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족의원이란>

건설·교육 등 특정분야에서 정부기관·기업 등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회의원들을 말한다. 출신지역·경력·개인관심도 등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수산업이 중요한 홋카이도(北海道)출신은 수산족이 많고, 경제관료 출신들은 금융족·재정족·상공족 등이 된다. 족의원은 이권 개입·유착 가능성이 있는 반면 전문성을 바탕으로 활발한 입법활동을 펼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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