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제2부 薔薇戰爭 제2장 揚州夢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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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5년에 걸친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 종국으로 치닫던 기원전 202년 가을. 유방에게 패하여 후퇴를 거듭하던 항우는 유방의 강화에 마지못해 응하고는 동쪽으로 철군하였다. 그러나 항우를 완전히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장량과 진평의 설득에 유방은 곧 항우의 군대를 추격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원전 202년 12월, 항우는 한의 대군에게 쫓겨 해하(垓下)에서 겹겹으로 포위되고 말았다.항우는 이미 싸움은 자신의 패배로 끝이 나고 있음을 알았다. 이때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준비하고 있다가 이렇게 말을 한다.

"자, 어서 타시오. 강동이 비록 작으나 지방이 천리라오. 그곳에서 재기하기 충분하니 대왕은 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시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항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8년 전 강동의 8천여 자제들과 함께 떠난 내가 어찌 혼자 강을 건너 돌아가겠소. 비록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용서한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왕을 하겠소."

그리고 항우는 애마 추를 베고,목을 찔러 자살을 하는 것이다. 이 때 항우의 나이는 31세.

두목은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어째서 항우가 정장의 말을 듣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지 않았는가를 준엄히 비판하였다.

두목은 항우가 '산이라도 뽑아낼 만큼의 기개'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수치를 싸고 부끄러움을 참는 인내심'은 없음을 한탄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두목은 천년 전 항우에게 배를 탈 것을 권유하였던 정장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항우를 노래한 시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시다.

"승패는 병가도 기약하지 못하나니, 수치를 싸고 부끄러움을 참는 것이 진짜 사나이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가 없지 않은가."

항우가 수치심을 참고 정장의 말을 듣고 배를 타고 강동으로 돌아갔다면 그곳에서는 준재가 많으므로 반드시 재기하여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올 수 있음을, 즉 권토중래할 수 있음을 한탄한 우국시를 통해 왕정은 나라를 사랑하는 두목의 충정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왕정은 두목이 '이 난세를 구할 흙먼지를 일으키며 쳐들어올 영웅'의 표현을 썼을 때 문득 그가 쓴 시 구절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

두목은 항우와 같은 구국의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권토중래할 호걸이 나타나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목이 어째서 왕정을 찾아왔는가하는 이유는 자명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이사도의 난을 평정한 장보고와 정년을 널리 알림으로써 백성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열정 때문인 것이다.

"대인 어른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왕정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대답하였다.

"하오니 뭐든 물어봐주십시오.소인이 아는 대로 소상히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두목이 품속에 넣고 다니던 휴대용 붓을 꺼내들고 물어 말하였다.

"훗날 잊어버릴지 모르겠사오니 간단히 기록해도 좋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선선히 왕정은 대답하였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두목은 탁자 위에 종이를 펼쳐놓으면서 입을 열어 말하였다.

"장보고와 정년이 어디서 태어났으며,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부터 알고 싶나이다. 또한 언제 바다를 건너 당으로 건너왔으며, 무엇을 하다가 군문에 입대하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 언제 당에서 신라로 돌아가 청해진대사가 되었는지,그렇다면 정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나이다."

두목의 말을 들은 왕정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살구나무 위에서 울고 있던 이름 모를 새는 사라져버리고, 다소 알이 굵어진 봄비는 여전히 뜨락을 자옥하게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장보고와 정년은 천재시인 두목의 붓끝에 의해서 역사의 장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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