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뛴 중년남자여 글 쓰며 뒤도 돌아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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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제 또래의 중년 남자들에게 꼭 글을 써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날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군요."

4년간 틈틈이 쓴 짤막한 글들을 모아 최근 수필집 『얼룩무늬 갑옷 속의 나』(북 랜드)를 펴낸 현역 대령 박준규(47·강원도 원주시)씨의 '아저씨 업그레이드'를 위한 제안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 인생관도 변했습니다. 오직 앞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지난 생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면서 이젠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의 책에는 가족과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부터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군 생활을 하라'는 신세대 장병들에 대한 부탁까지 일상 속의 일들을 소재로 한, 잔잔한 글 50여편이 담겨있다.

현재 육군 제1군 사령부에 근무 중인 박씨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지 올 해로 28년째.

박대령은 '아들,딸 구별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1980년대 초 정부 방침에 따르느라 아들 하나만 낳을 정도로 고지식한 군인. 그런 그가 수필을 쓰게 된 것은 4년 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다. 교육 문제 때문에 부인 곽희수(47)씨와 아들 종진(20)군이 대전에서 서울로 옮겨갔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있다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으로 저녁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거든요."

그는 "가끔 동창생들을 만나면 만취하도록 술을 마신 뒤 사회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며 "아저씨들의 모임도 살아가면서 각자가 느낀 진솔한 경험 등을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대령은 바쁜 군생활 중에서도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98년에는 대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수석(壽石)모으기, 전화카드 수집하기 등 취미도 다양하다.

'딱딱하고 엄할 것 같다'는 군인의 이미지와 달리 박씨는 가정에선 아내를 존중하는 자상한 남편이다. 이번에 내놓은 책은 군인 남편을 둔 탓에 20번이나 이삿짐을 싸야 했던 아내를 위한 결혼 20주년 선물이다. 아들에겐 친구같은 아버지이기도 하다.

"미술을 공부하는 녀석이라 외모에도 관심이 많아 귀걸이, 반지를 하고 향수도 뿌리고 다니지만 전 나무라지 않습니다. 부모의 책임은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기에게 맞는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일테니까요."

박씨는 "군복을 벗게 되면 대학원 시절 취득한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살려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김현경·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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