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전임 ‘뒷돈’ 주는 사업주 사법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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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금속노조 산하 A지역지부는 현재 지역 내 회원인 16개 업체로부터 연간 9200만원을 받고 있다. 이 돈은 지부가 자체 채용한 상근자들의 인건비로 지출된다. 금속노조 B지역의 지부도 지역의 9개 회사로부터 월 900만원씩의 인건비를 받는다. 또 C지역에 있는 12개사는 월 580만원의 노조재정자립기금을 같은 노조 지부에 대주고 있다.

노동부는 이처럼 노조에 인건비나 운영비 등을 대주는 사업주를 다음 달부터 전원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금속노조 산하 지역 지부별 사업주의 노조운영비 지원 실태를 상당부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 달 1일부터 노사공동의 업무를 수행하는 노조간부에게만 일정 시간 동안 일한 것으로 간주해 임금을 지급하고, 다른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은 전면 금지하는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제도를 시행하는 데 따른 것이다. 이를 어기고 사업주가 노조간부나 노조에 금품을 제공하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13일 노동부에 따르면 사업주가 돈을 모아 노조 상근자의 인건비를 대주는 금속노조 지부는 6곳이다. 68개 업체가 월 200만~900만원을 지원하고 금속노조 지부 3곳은 25개사로부터 ‘노조 재정자립기금’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돈을 받고 있다. 운영비 조 로 돈을 받는 지부도 2곳(14개사)인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부 고위관계자는 “금속노조 산하 상당수 사업주가 노조를 달래기 위해, 또는 힘에 밀려 운영비 등을 대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런 뒷돈은 다음 달 시행되는 노조전임자 무임금 원칙을 훼손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5일부터 자체 부당노동행위 신고센터를 설치해 사업주의 노조 편법지원에 대한 신고를 받는다. 한국경총 황인철 기획홍보본부장은 “사업주의 자율적인 상호 감시감독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부의 강경조치는 지난달 초 노사정 협의 내용과 배치돼 논란이 예상된다. 당시 정부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과 같은 상급단체 파견자에게는 사업용역 형식으로 임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지역 노조에 대한 사업주의 지원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중잣대’라는 것이다. 노동부는 금속노조가 계획 중인 15~17일 4~6시간 부분파업과 21일 총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해 관련자를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금속노조의 파업이 겉으로는 임금인상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파업 사유가 안 되는 전임자 임금 보장을 핵심 안건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반발했다. 두 노총은 이달 말까지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보장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라는 지침을 각 지부에 시달한 상태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외협력국장은 “전임자 임금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상해서 정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강제로 이를 막는 것은 노사 자율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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