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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우리 감독, 우리 선수들의 짜릿한 첫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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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겼다. ‘압도적’이라는 말 밖에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흠잡을 데 없는 한판승이었다. ‘문전 처리 미숙’과 답답한 백 패스의 고질병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태극전사들은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운동량에서 월등했고 탄탄한 조직력이 빛났다. 빼어난 전술과 안정적인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이정수 선수의 선제골과 박지성 선수의 쐐기골은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제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B조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했다. 월드컵 16강을 향한 산뜻한 스타트를 끊었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출전을 이뤄낸 아시아축구의 맹주(盟主)다. 하지만 언제나 1승이 아쉬웠다. 안방에서 치러진 2002 한·일 월드컵을 제외하면 2006 독일 월드컵 때 토고를 2-1로 물리친 것이 유일한 승리였다. 승전보를 전한 감독들은 한결같이 네덜란드 출신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한국 축구가 변방에서 탈출을 선포했다. 한국인 감독의 지휘로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본선 원정경기에서 사상 첫 승리를 따낸 것이다. 허정무 감독의 승부사적 기질과 우리 선수들의 놀라운 집중력이 돋보였다. 여기에다 열두 번째의 태극전사, 붉은 악마를 앞세운 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결실을 맺었다.

월드컵 원정 16강은 더 이상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니다. 남은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중에 한 팀만 잡으면 된다. 물론 부담을 떨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축구공은 둥글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인 자블라니는 어느 공보다 둥글다. 승부의 세계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로지 최선을 다하는 경기만이 후회를 남기지 않을 뿐이다. 그동안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 축구사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왔다. 11명의 단합된 힘이 뛰어난 개인기를 누르는 기적을 일군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그제의 짜릿한 승리도 16강을 향한 첫 걸음일 뿐이다. 진짜 경기는 지금부터다. 최선을 다해 당신들의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주길 기대한다. 온 국민들도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