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있는 책읽기] 신화는 세상을 읽는 열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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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양신화 1, 2(중국편)
정재서 지음, 황금부엉이
각 312·360쪽, 각권 1만2800원

“사람마다 상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동양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배우게 될 소중한 교훈이다. 서양의 그리스·로마 신화나 안데르센 동화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의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서문 중에서

신화하면 대부분 그리스·로마 신화를 떠올린다. 신화 읽기 열풍도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로부터 시작됐다.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해석이 유려한 문체와 만나면서 신화는 구태의연함을 벗어 던지고 전혀 새로운 읽을거리로 환골탈태한다. 이후 만화에서부터 전문 연구서까지 다양한 신화 관련서가 나왔다. 그러나 그건 서양만의 신화이다.

『이야기 동양 신화』에서는 서양신화에 가려졌던 동양의 신화를 만날 수 있다. 창세기 혼돈의 신 제강, 천지개벽을 이뤄낸 거인 반고, 인간을 창조한 여신 여와, 사랑과 미의 여신 서왕모, 반인반수의 몸이지만 자비로운 농업의 신 염제 신농, 기발한 인어 아저씨 저인, 붉은 악마의 모티브가 된 불굴의 영웅 치우천왕, 동양 최초의 사이보그라 할만한 언사의 광대인형. 생소하기만 한 이들이 바로 동양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신화는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신화 속에는 각 문화권의 가장 근원적인 원형질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서양 신화에 서양 문화의 원형질이 숨어 있으며 동양 신화에는 동양 문화의 원형질이 숨어 있다. 같은 이치로 서양 신화가 서양적인 사고방식과 상상력의 원형을 담고 있다면, 동양신화는 동양적인 사고방식과 상상력을 담고 있다. 이 미세한 차이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삶과 문화 그리고 사회를 좀 더 거시적이고 근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

혼돈의 알을 깨고 천지를 개벽한 거인 반고가 늙어 죽자 그의 몸은 강물이나 구름, 산 등으로 변모한다. 이것이 동양의 핵심적 자연관이다. 동양은 모든 것이 자연에서 시작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생태 순환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반면 서양 신화에서 자연은 다른 신에 의해 살해된 거인 신의 절단되고 분리된 신체로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다. 동양의 통합적이고 순환적인 사고 방식과 서양의 의도적이고 분리적인 사고방식이 명백하게 대조되는 지점이다.

인간을 창조한 여신 여와는 땅을 지배하는 신 고비의 자식으로 복희와 남매지간이다. 여와와 복희는 히브리 신화의 노아 부부처럼 대홍수로부터 살아남는다. 두 이야기는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홍수가 일어난 원인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동양 신화에서 대홍수는 신 고비와 뇌공의 싸움으로 일어난다. 즉 홍수는 자연재해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된다. 반면 서양 신화에서 대홍수의 원인은 신의 노여움 때문이다. 이때의 대홍수는 신이 내린 징벌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 서양의 명백한 신 우위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동양은 신과 인간의 구별이 느슨하고 자연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는 사고가 우세하다.

히브리 신화 창세기에는 하느님이 곡식과 짐승을 닷새에 걸쳐 만들고, 엿새째 되는 날 사람을 만들며, 이레째 되는 날에 쉬었다고 전한다. 인간은 맨 마지막에 창조된 만물의 영장으로 신 다음의 지위를 얻어 다른 생명체 위에 군림하는 권능을 얻는다. 이와 달리 동양 신화에서는 인간이 동·식물보다 우위에 있다기보다는 공존의 관계요, 평등의 관계로 설정된다. 여신 여와는 정월 초하루 닭을 만들기 시작해서 이레째 사람을 만들고, 이후 여드레에 일반 곡식을, 열흘째 되는 날에는 보리를 만든다. 이러한 천지 창조 신화를 통해 우리는 동양신화가 자연과 인간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사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20세기를 지배한 서구적 패러다임 안에서 동양적인 것은 배제되고 억압되어 왔다. 서구적 패러다임은 이원론적 사유 구조를 기반으로 했고 필연적으로 서열과 위계를 만들었다. 20세기 역사는 자아와 세계,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의 대립 속에서 전자의 후자에 대한 일방적인 승리와 그로 인한 파국들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서구적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신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화는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존재의 근원이자 의식의 뿌리인 신화를 통해 새롭게 세계를 이해하는 길을 찾아보자.

이수정(경기 양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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