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교 한 聖地' 쟁탈전 : 분쟁 부른 바브리 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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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도의 양대 종교인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그 오랜 갈등이 수천명의 피를 뿌리는 유혈분쟁으로 이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진원지(震源地)로 등장한 곳은 북동부 아요디야시(市)의 이슬람 사원인 바브리 사원이었다.

두 종교 모두 바브리 사원의 옛터를 성지로 삼고 있어 타협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폭동 사태의 발단도 바브리 사원 옛터에 힌두교 사원을 지으려 한 데서 비롯됐다.

고대설화에 따르면 아요디야는 힌두교의 영웅신인 라마의 탄생지였다. 라마가 태어난 자리엔 그를 기리는 사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온다.

하지만 16세기 초 인도 동부까지 세력을 넓힌 무굴 제국은 라마 사원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대신 이슬람 사원을 세웠다. 그 사원이 바로 무굴제국 지도자의 이름을 딴 바브리 사원이다.

이 사원을 둘러싼 두 종교 간의 충돌은 영국 식민지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 후인 1949년엔 사원 내부의 벽에서 라마상(像)이 나타났다고 힌두교도들이 주장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특히 이슬람교도 등 이교도를 배척하는 힌두교 원리주의 세력은 아요디야에 힌두교 사원을 재건하는 것을 종교운동의 큰 목표로 내세웠다. 현재 인도의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은 91년 총선에서 라마 사원 재건을 공약으로 내걸고 의석을 늘려 제1야당으로 급부상했다. 사원 재건 운동의 지도자 랄 크리슈나 아드바니는 현 정부의 내무장관이다.

92년엔 5만여명의 힌두교도들이 모인 가운데 바브리 사원의 코앞에다 힌두교 라마 사원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를 시작해 이를 저지하려는 이슬람 교도와 대규모 충돌이 빚어졌다.

3천명에 이르는 희생자의 대부분은 이슬람교도였다. 바브리 사원은 이 와중에 완전히 파괴돼 소유권이 법원으로 넘어갔다.

10년 가까이 잠잠했던 분쟁은 지난해 바브리 사원이 파괴된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짓겠다는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하면서 재연되고 있다. 그 원인과 양상도 10년 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고 폭동을 주도하는 세력도 세계힌두협회(VHP)로 당시와 마찬가지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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