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 전성시대 "지식인 역할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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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성껏 가르치고 키워온 제자가 어느 날 당신에게 이제 선생님의 가르침 없이도 혼자 공부할 수 있으니 곁을 떠나겠노라고 선언한다면 이를 대견하게 받아들이겠는가, 아니면 배신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중국,축제인가 혼돈인가』는 개혁·개방 이후 급격히 변화하는 대중문화와 이에 탐닉하는 인민들에 대해 지식인들이 겪는 갈등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중국 인민의 위상이 제고된 것은 지식인의 영도에 힘입은 바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인민들이 이제는 홀로 서서 스스로의 문화를 즐기는 '축제'에 젖어있지만 지식인들의 눈에는 혁명 이전으로 회귀한 듯한 '혼돈'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러한 괴리에 대한 지식인의 비분강개는 인민의 진정한 구원을 위한 고뇌일까, 아니면 소외로부터 오는 분노일까.

중국은 역대로 매우 독특한 대중문화를 생산해왔다. 현대중국 역시 대중문화를 진작시켜왔지만 내용상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것과 차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지식인들이 문화생산의 중심에 서서 문화의 품격과 이념을 유지하고 인민을 이끌어왔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시장 경제의 도입과 함께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유입되었다.

자본주의 문화는 소비 영웅을 내세워 소비의 미덕을 전도하게 마련인데, 이들 소비의 전도사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문화를 창출함으로써 대중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러한 소비 문화와 그 영웅의 창출을 지식인들에게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대중문화는 지식인의 영도없이 인민의 기호에 따라 유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 양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 것인데 이것을 저자는 '문화충돌'로 정의한다.

이를테면 인민들은 예전보다 더 혁명 이념이 짙게 밴 '홍색경전(紅色經典)'류의 연예물을 찾아 즐기지만, 거기서 그들이 열광하는 것은 역사성이 아니라 회고풍의 오락성이다. 가요 '붉은 태양'이 히트한 비결은 이념보다 그 창법과 연주기법에 있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이처럼 근대성에 의해 억압돼왔던 인민들의 다양한 욕구가 대중문화를 다원적 구조로 변화시키면서 이념을 중심에 세웠던 문화의 유일신적 구조를 밀어낼 때, 지식인이 겪어야 하는 소외감은 위기의식이 아니면 절망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뭇신들의 카니발(衆神狂歡)'이라는 원제는 이러한 대중문화의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저자의 시각을 대변하는 듯하다. 저자는 문혁을 겪고 개혁·개방을 외치던 세대의 지식인이다. 이들은 당시의 초발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른바 인문정신을 소리높이 외쳐보기도 했지만, 이미 중심이 옮겨간 조류의 방향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임을 스스로 시인한다.

더욱이 지식인들을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텔레비전이라는 대중매체가 지식인을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인민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더 이상 지식인을 쳐다보지 않는다. 영화 '서랍 속의 동화'에서처럼 그들의 갈등은 텔레비전이 단번에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개인 정서의 해방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대중문화가 신흥 유토피아로 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을 문화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이상이 지는 해의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국 지식인의 모습을 이 책은 보여준다.

중국 대중문화의 현실을 힘이라는 실재로부터 설명한 저자의 독창적인 붓끝을 따라갈 때 우리는 "아하!"를 연발하며 어느덧 중국의 한 모퉁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김근

<서강대 교수·중국문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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