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라 아지즈 사우디 왕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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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땅과 평화의 교환'이란 획기적인 중동평화안을 제시해 '스타'로 떠오른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79·사진)는 실은 강력한 반(反)이스라엘 노선을 견지해온 아랍 민족주의자다. 그는 평소 "이스라엘이 아랍영토에서 물러나기 전엔 화해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그가 갑자기 극적인 화해안을 들고 나온 것은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사우디의 정정(政情)을 반전시켜 보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사우디 내 미군 기지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용하면서 반미 이슬람 과격파의 목소리가 커진 데다 국민소득이 80년대에 비해 7천달러나 떨어져 1만달러선에 턱걸이할 만큼 심각한 경제상황 때문에 사우디 왕정의 정치력은 매우 불안한 상태다. 게다가 9·11 테러 용의자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이어서 국제적 이미지도 악화됐다. 따라서 압둘라 왕세자는 획기적인 중동평화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내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해 아랍권의 맹주 지위를 다지려 한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압둘라 왕세자가 '제2의 사다트'가 될지 모른다는 다소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인이 된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은 1977년 오랜 앙숙인 이스라엘을 자진방문, 평화협정을 이끌어내 순식간에 국제사회의 스타가 됐다. 이스라엘의 초청에 응해 압둘라 왕세자가 이스라엘을 방문하면 그는 사다트 이래 최초로 이스라엘 땅을 밟는 이슬람 국가 지도자가 된다.

1923년 리야드 태생인 압둘라 왕세자는 사우디의 국부(國父)인 압둘 아지즈 국왕의 13번째 아들이며 현 파드 국왕의 이복동생이다. 95년 국왕이 뇌졸중으로 병석에 눕게 되자 그를 대신해 사실상 사우디를 통치해왔다. 뉴욕 타임스의 중동전문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아랍왕족 중 부패에 덜 물든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7일 압둘라 왕세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새 평화안을 '희망의 표시'라고 치하하는 등 그의 제안에 연일 국제적 지지가 쏟아지고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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