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시위 聖域'옛말 노조 퇴거 요구 등 강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사흘간의 파업을 마친 철도노조 김재길(金在吉)위원장은 27일 "철도 노동자의 절박함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 불편을 초래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떠난 농성장의 풍경은 룰과 질서가 없는 과거 모습 그대로여서 관계자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서울대측은 이날 발전노조원 4천여명이 떠난 노천극장 주변에서 5t트럭 일곱대 분량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뿐만 아니라 노조원들이 잠을 잤던 강의실의 출입문들이 대부분 고장났다. 화가 난 서울대측은 쓰레기 처리비용 3백60여만원 등 피해복구 비용 5백49만원을 노조측에 요구키로 했다.

농성기간 중 조합원들의 느슨한 규율은 대학측과 인근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서울대와 건국대에서 농성하던 중에 일부 조합원들은 인근 상가에서 술을 사다 마셨다. 27일 오전 대학 내 곳곳에선 빈 소주병과 과자봉지 등이 눈에 띄었다.

"파업기간 동안 밤낮으로 소음에 시달렸다"는 인근 주민은 "생존권 쟁취를 위해 싸운다는 사람들이 술은 왜 그렇게 마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위자들에게 관대했던 명동성당은 이번 파업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명동성당에서 나흘째 농성 중인 발전·가스 노조원 70여명은 성당측의 전례없는 강경한 자세에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다. 성당측은 지난 25일 백남용 주임신부 명의로 '오후 6시까지 퇴거하라'는 요구서를 농성단에 전달한 후 밤에는 농성자들의 텐트로 들어가는 전기를 차단했다. 교육관 문을 잠가 화장실 사용도 못하게 했다.

이때문에 공공연맹의 한 관계자는 26일 밤 경찰측에 "간이 변기를 가져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명동성당측은 "독재정권 시절엔 수배자들을 돌봤으나 지금은 이해집단들의 투쟁 거점이 되고 있다"며 "사수대들이 성당 분위기를 해쳐 철수를 요청했다"고 입장이 달라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오전 10시 건국대 대운동장에서 열린 철도노조의 협상결과 보고대회에서 일부 노조원들은 집행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김영훈 정책국장이 단상에 올라 협상안 낭독을 마치자 한쪽에선 "고작 이를 위해 파업했느냐" "협상 다시 해라"라는 야유를 보냈다.대회를 마치고 단상을 내려온 김재길 위원장은 서울지역 열차승무원 지부 소속 조합원 1백여명에게 둘러싸여 10여분간 불만섞인 항의를 받았다.

이무영·손민호·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