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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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양 스케이팅은 19세기 말에 한국에 첫선을 보였다. 1894년 고종이 캐나다 선교사인 에비슨 부부를 경복궁 내 향원정의 얼어붙은 연못으로 불러 당시 '얼음발굿'으로 불리던 스케이팅 시범을 보았다. 고종은 에비슨이 미끄러져 넘어질 때마다 박장대소를 하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는 1908년 당시 YMCA총무 현동순(玄東淳)이 귀국하는 미국인 선교사 길레트가 쓰던 스케이트를 사서 삼청동 구천(溝川)에서 탄 것이 시초였다.

쇼트트랙은 스피드스케이팅보다 출발이 훨씬 늦었다. 1909년께 미국에서 처음 시합이 열렸지만 북미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1967년에야 국제빙상연맹으로부터 경기종목 공인을 받았고, 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부터 비로소 겨울올림픽 공식종목이 됐다. 한국 쇼트트랙은 83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선을 보였다. 출발은 늦었지만 그간 다섯 차례 올림픽에서 모두 11개 금메달을 따내며 명실공히 세계최강 대열에 올랐다.

어제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한국은 김동성(金東成)선수의 쇼트트랙 1천5백m 실격파문의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주최국 미국은 축제분위기다. 4년 전 나가노올림픽의 세배 가까운 메달(34개)을 따낸 미국의 약진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5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88년 캘거리대회에서 참패한 미국은 뉴욕양키스의 괴물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이끄는 위원회를 만들어 대책마련에 나섰다. 위원회는 89년에 "미국 올림픽팀의 목표는 메달이며, 이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은 이번 올림픽 대표팀에 나가노 때보다 두배 늘어난 4천만달러(약 5백20억원)를 투자했다. 문제의 안톤 오노 선수도 메달 포상금으로만 4만달러를 챙겼다. 텃세나 오심 덕도 있지만, 미국이 거둔 메달의 대부분은 이런 투자의 대가라는 결론이다.

성화가 꺼진 지금 우리도 냉정을 찾아야 한다. 오노가 밉고 미국이 싫다고 언제까지 녹화필름만을 돌려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모처럼 결집된 분노와 애국심을 잘 결집시켜 다음 올림픽에 나갈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스포츠는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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