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수뇌부, ‘스폰서 파문’ 책임지는 모습 보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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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검사 스폰서 파문’의 본질은 검사가 업자로부터 향응 접대를 받으며 ‘청탁의 볼모’가 되어가는 타락 과정에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란 막강한 권한을 쥔 검사가 뒤가 구린 업자와 놀아나는 잘못된 관행이 조직문화라는 형태로 발전했고, 도덕적 마비상태까지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런 실상을 접하게 된 국민들은 충격과 함께 총체적으로 검찰을 불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앞으로 검찰 수사와 기소의 공정성을 믿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이 구성한 진상규명위원회는 스폰서 의혹의 실체를 밝혀냈다고 어제 발표했다. 규명위는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48일간 전·현직 검사, 수사관, 접대업소 종업원 등 100여 명 넘게 조사했다. 그 결과 일부 검사들의 향응 접대, 성 접대, 촌지 제공 등 비위 행위가 드러났고, 검사장급 2명을 포함해 현직 검사 10명의 징계를 검찰총장에게 건의했다. 이를 놓고 보수·진보 시민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스폰서 검사를 스폰서한 조사” “솜망방이 처벌”이라고 비판했다. 규명위는 형사처벌과 관련, “부적절한 식사, 술 접대를 받은 사실은 있었지만 지속적인 접대나 대가성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제 검사들의 추한 모습은 ‘의혹’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우리는 규명위 권고와 별개로 검찰 스스로 특단의 쇄신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일부 부패한 검사의 일탈(逸脫)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국민들에게 비춰진 검찰상(像)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규명위 권고처럼 대검 감찰부장의 외부인사 영입, 검사윤리행동 매뉴얼 마련, 검찰 문화 개선 등의 소극적인 개혁안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과거의 경험은 말해준다. 각종 비리 사건으로 ‘떡값’과 ‘전별금’을 받은 검찰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은 적이 있다. 그뿐이었다. 여론 무마를 위한 구호만 요란했지 이번 스폰서 파문에서 드러났듯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검찰은 스폰서 파문 관련자의 징계 절차를 서두르는 한편 비리근절과 기강확립을 위한 개혁 절차에 돌입할 방침이다. 제도적으론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시민들이 견제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과성(一過性) 조치로는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없다. 검찰 내부의 의식과 문화를 일부 바꾸고 검사 몇 명을 징계한다고 하루아침에 검찰이 변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대대적인 내과적 외과적 수술이 없으면 불미스러운 일들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검찰 수뇌부는 검찰이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직시하길 바란다. 왜곡된 검찰 문화를 혁파(革罷)하지 않으면 권위주의 시절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과는 또 다른 불명예를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독버섯처럼 자라온 스폰서 문화를 끊고 국민의 검찰이 되려면 수뇌부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국회의 특검 도입으로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수습하는 게 검찰을 위해 바람직하다. 몸을 던지는 자기 희생이 조직을 살릴 수 있다. 검찰의 철저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국민들은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