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렇습니다] 월드컵 ‘베팅 마케팅’의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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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을 때마다 5명에게 상품권(1인당 500만원)을 쏩니다’. (코오롱)

‘1승을 거둘 때마다 10명에게 500만원씩 인터넷 쇼핑 적립금을 줍니다’. (GS샵)

월드컵을 앞둔 유통업체들의 ‘베팅’(내기)이 시작됐다. 이른바 ‘컨틴전시 보험(Contingency Insurance·상금보상보험)’ 마케팅이다. 특정 행사를 앞둔 업체가 보험사와 일회성 보험계약을 하고 경품 행사를 여는 것이다. 경기 승패 등 조건을 걸고, 이를 충족하면 비용을 보험사에서 내는 방식이다. 월드컵·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기업들의 월드컵 마케팅이 한창이다. 9일 서울 명동에서는 온라인쇼핑몰 ‘11번가’가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과 동명이인을 찾는 이벤트(사진 왼쪽)가 펼쳐졌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는 치킨·베이징덕·훈제족발 등으로 구성된 ‘16강 기원 모듬안주’ 등 먹을거리 판촉 행사가 열렸다. [뉴시스]

보험 마케팅은 경품을 내건 유통업체와 보험사 간의 ‘확률 싸움’이다. 보험료가 확률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8강 진출을 조건으로 총 6400만원의 경품을 내건 아이파크몰의 경우 경품 비용의 약 20%인 1300만원을 보험료로 냈다. 8강에 진출할 확률을 20%로 봤기 때문이다.

최근 재보험사(보험사를 보험하는 회사)들이 정한 보험료율에 따르면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확률은 48%, 8강은 16%, 4강은 6%다.

유통업체가 여기에 뛰어드는 이유는 큰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기’의 속성상 소비자의 관심이 높다. 올 1월 캐나다 밴쿠버 겨울 올림픽에서 보험 마케팅을 활용한 롯데백화점의 경우 응모율(구매고객 중 행사에 응모한 고객의 비중)이 7%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열린 다른 경품 행사의 응모율(4%)에 비해 높았다.

대형 스포츠 행사가 열리면 매장 방문객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도 유통업체가 컨틴전시 마케팅에 집중하는 이유다. 스포츠로 쏠린 시선을 끌어오기 위한 작전인 것이다. 김영민 아이파크몰 마케팅 담당 부장은 “적은 비용으로 마케팅 행사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원하는 결과를 조건으로 내걸기 때문에 참여도가 높다”고 말했다.

보험사도 반기는 편이다. 박윤현 롯데손해보험 부장은 “보험사도 재보험에 가입하기 때문에 지급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손해가 크지 않다”며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경우에만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회사 이미지도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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