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수단서 보장우선 인식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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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사망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종신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요즘 크게 늘어나는 배경은 뭘까. 환란이후 한국사회에는 여러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이가운데 보험업계에서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종신보험의 대약진을 드는데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종신보험은 일부 외국계 생명보험사의 전유물이었다. 몇몇 외국계 생보사들만이 파는 이국적인 보험 상품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내 모든 생보사들은 종신보험의 판매에 온힘을 쏟고있는 실정이다. 종신보험이 국내 생보사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국내 생보사가 판매하고있는 상품의 50~60%를 종신보험이 차지하고있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종신보험의 총 수입보험료(전체 생보사가 거둬들인 총보험료)는 99년(회계연도 기준) 3천6백70억원에서 2000년에 1조6백79억원으로 갑자기 2배이상 늘어나더니 다시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단7개월사이에 이의 두배인 2조51억원으로 증가했다.

대표적인 보장성보험인 종신보험의 위력은 무엇보다 사망 원인에 관계없이 보험금을 받을 수있는 점이 꼽힌다. 사망했을때 예외없이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가장이 가족에게 남겨줄 수있는 매우 훌륭한 유산이 되는 셈이다.

종신보험의 계약이 갑자기 증가하는것은 계속되는 저금리, 생보사의 경영전략 변화등을 요인으로 꼽을 수있으나 무엇보다 보험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한국의 과거 보험상품을 보면 70년대에는 단기 양로보험, 교육보험이, 80년대에는 금리연동형 연금보험과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이 주종을 이루었다. 대부분이 보험을 재테크 수단의 하나로 여기는 저축성보험이 대세였으며 보장성보험의 비중은 매우 미미했다. 특히 지난 87년 개발된 노후설계연금보험은 대표적인 저축성 보험으로서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생보사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0년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저축성보험보다 보장성보험이 선호되기 시작했다. 종신보험은 이같은 추세를 선도하며 국내 보험업계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돌풍을 연출했다.

종신보험의 인기는 그전까지만 해도 은행예금과 비슷한 저축의 한수단쯤으로 여겨왔던 보험에 대한 인식이 이제 미래의 위험에 대한 보장수단이란 본연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음을 설명한다. 다시말해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이에대한 대처방안으로 보험을 선택하게됐다는 것이다.

이는 IMF이후 대량해고, 대기발령 등 가시밭길같은 직장생활을 겪으면서 장래에 대해 불안심리가 가중되고 이같은 불안이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탈출구를 찾아간 것이란 지적이다.

생명보험협회 연구개발실 김재훈부장은 "종신보험의 확산은 IMF를 거치면서 앞날에 대한 보장의식이 강화된 결과로 볼 수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금융연구소 김형기 수석연구원은 "특히 종신보험가입 연령층이 30대가 가장 많게 나타나는것은 이제 40대에서도 얼마든지 직장을 잃을 수가 있어 그만큼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가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셀러리맨의 비극적 말로에 따른 불안감이 우리사회에도 엄습해왔다고나 할까.

이 분석이 소비자측의 입장이라면 공급자인 회사측의 입장에서는 저금리가 종신보험 판매에 역점을 두는 계기가 되었다.

보험개발원 동향분석팀 양성문팀장은 "생보사가 종신보험의 판매에 적극 나선 이유는 저금리아래서는 종신보험같은 장기 보장성보험이 금리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고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증가함에따라 사망시점이 예정보다 늦어져 사차익(死差益) 실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정갑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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