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초반 불리 … 화끈한 역공으로 뒤집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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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삼성화재배 시상식. 왼쪽부터 이수창 삼성화재 사장, 이세돌9단, 왕시5단, 임선근 한국기원 사무총장.

이세돌9단은 역시 수읽기의 귀신이었다. 중국의 신예강자 왕시(王檄)5단은 먼지 자욱한 야전의 대결에선 전혀 이세돌의 적수가 아니었다.

9일 열린 중앙일보 주최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결승전 2국에서 이세돌은 절대절명의 순간에서도 완벽하고도 치밀한 수읽기로 왕시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며 1국(7일)의 승리에 이어 또다시 불계승을 거둠으로써 2대0 스트레이트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우승상금 2억원, 준우승 5000만원).

삼성화재 본사에서 열린 2국의 초반은 오히려 왕시가 앞서 나갔다. 그러나 중반부터 이세돌은 예상 외의 강습으로 판을 뒤흔들어 순식간에 승부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그러고는 백척간두의 아슬아슬한 싸움이 벌어지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전투감각으로 왕시를 허물어뜨렸다. 276수, 백 불계승.

중국은 이창호9단이 없는 이번 삼성화재배를 절호의 기회로 여기며 '황금저울'을 지닌 왕시가 9년 만에 중국에 세계대회 우승컵을 안겨주리라 믿었다.

왕시의 균형감과 계산력이 이세돌의 사나움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세돌의 강풍 앞에서 왕시의 황금저울은 무력하기만 했다.

전남 신안군에 있는 비금도에서 태어나 권갑룡도장에서 바둑을 익힌 이세돌(21)9단은 어려서부터 '비금도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고 2002년 후지쓰배 우승, 2003년 LG배 우승 등 세계무대를 휘저으며 일직선으로 정상까지 도약했다.

기풍과 성격에서 정반대인 이창호9단과 숱한 명승부를 펼치며 바둑계에 '이이(李李)시대'란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올해는 왕위전 결승에서 이창호9단에게 패배하며 무관으로 떨어졌으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다시금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 백1, 사선에 둔 묘수

<하이라이트>=이세돌9단이 백. 하변에서 천지대패가 벌어졌다. 흑엔 상변에 팻감이 많아 백 위기설이 파다했다. 그러나 수읽기의 귀재 이세돌은 백1로 사선에 두는 절묘한 수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흑 4로 패를 쓸 때 5로 때려내 불청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공작.

흑 6으로 상변 백 대마는 모조리 죽었다. 그러나 백은 7, 9로 중앙 흑 대마를 잡아 승리를 결정짓는다. 모두 백 1의 위력이었다.

*** 이 9단 일문일답

"내년엔 이창호 9단 넘고싶다"

우승 직후의 인터뷰에서 이세돌9단은 이창호9단을 넘어 세계 최강자가 되겠다는 집념을 솔직히 드러냈다. 다음은 이세돌9단과의 일문일답.

-우승을 축하한다. 결승전 소감은.

"구리(古力)7단과의 준결승전이 진짜 승부라 생각했고, 결승전 상대가 정해졌을 때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좀 더 안정감있는 바둑을 둘 수 있었다."

-우승을 누가 가장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나.

"가족…아니 내가 가장 기쁘다."

-얼마 후엔 도요타-덴소배 결승전이 있다. 창하오(常昊.중국)9단에 대한 승산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65~70% 정도 내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상대 전적에선 내가 뒤지지만 그건 예전 일이라 의미가 없다고 본다."

-중국에선 항상 이창호9단을 최고로 치고 그 다음 이세돌9단을 친다. 이점에 불만은 없나.

"내가 더 많이 졌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앞으로 노력해서 (이창호를) 이기고 싶다."

-2004년이 저물었다. 내년도의 목표는.

"이창호9단을 넘고 싶다. 내년도에 벌어질 이창호9단과의 승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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