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돌보듯 놀이터 가꿔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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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송파구 가락본동에 사는 김장록(64)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7시면 인근 훙이어린이공원을 찾는다.5백여평 공원의 쓰레기를 치우고 미끄럼틀 등 놀이시설도 꼼꼼히 들여다보며 망가진 곳이 없는지 살핀다.

잠시 뒤 다른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나타나 휴지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공원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이들은 어린이공원 관리를 맡고 있는 훙이경로당 노인들이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동네 어린이공원을 관리하며 활기를 찾고 있다. 경로당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노인들에게 보람있는 소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주민들은 안심하고 자녀를 공원에 보내고, 관리를 맡긴 구청도 만족하고 있다.

송파구는 1993년부터 어린이공원 관리를 경로당 노인회에 맡겼다. 노인회는 놀이시설 점검과 청소뿐 아니라 수목·잔디 관리도 한다.

지난해 말 송파구청에서 어린이공원 우수관리단체로 선정된 7곳 가운데 5곳이 노인회일 정도로 할아버지·할머니들의 관심은 각별하다.

주민 김복희(34·여)씨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손자·손녀의 방을 정리하듯 신경을 써 관리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칠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송파구는 주민의 호응을 얻자 올해 전체 어린이공원 74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41곳의 관리를 노인회에 맡기기로 했다.

이같은 성과가 알려지면서 다른 구청들도 잇따라 노인회의 힘을 빌리고 있다.

강서구는 지난해 9월부터 97개 어린이공원 가운데 등촌1동 등서공원 등 20곳의 관리를 노인회에 맡겼고, 올해엔 43곳으로 늘렸다. 당초 계획은 40곳이었으나 신청하는 노인회가 많아 3곳을 추가했다.

등촌1동 등서공원을 돌보는 등서노인회 회장 이강선(77)할아버지는 "경로당에서 화투놀이만 하던 노인들이 공원을 돌보면서 건강해지고 있다"며 "구청에서 지급하는 월 20만원 정도의 관리비가 경로당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동대문구도 올해 경로당에 장안1동 샛별공원 등 어린이공원 4곳의 관리를 맡겼으며, 내년에는 2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바뀌면서 어린이공원 관리 업무가 동에서 구청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구청들도 손이 부족한 처지여서 노인회 위탁 관리는 확산될 전망이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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