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어디쯤 와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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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 9일 "인터넷 신문도 새로운 언론"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자 인터뷰가 언론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실력으로 저지당했다. 언론이냐 아니냐가 정부에 의해 결정되고 언론(보도)의 자유가 실력으로 원천봉쇄되는 현실을 보고 과연 한국의 언론의 자유는 어디쯤 와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
온 신문·방송이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고 있고 하루 수백만명이 보고 있는 인터넷 신문을 새삼스럽게 주무장관이 언론이네 아니네 하는 것은 많은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지금까지 몰랐다면 공부 부족이고 알고도 가만히 있었다면 직무유기다. 언론의 여부가 주무장관에 의해 좌우된다면 보통 사태가 아니다. 미국 헌법은 언론을 위축시키는 법률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독일 헌법은 언론을 헌법적 제도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론으로도 그 자체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다양한 의견 형성에 기여하면 언론이 되는 것이지 정부가 이름표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헌법재판소도 정기간행물의 등록을 '실태파악을 위한 행정편의적인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등록되지 않은 정간물이라고 하여 언론매체로서의 성격이 좌우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등록이 그렇거늘 장관의 말 한마디로 어떤 매체가 언론이 되고 말고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념적으로도 자기를 감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언론을 두고 '응 너는 언론이야. 나 감시해도 좋아'하는 꼴이 돼 우습기 짝이 없다.
언론은 많은 정보를 전하는 반면 개인의 권리(명예·신용 등)를 침해할 우려도 있다. 독일은 1997년 '멀티미디어법'을 제정, 인터넷 신문에도 보도의 주의 의무와 편집책임자의 성명과 주소 표시를 의무화함으로써 국민을 만일의 위험에서 보호하고 있다. 우리 인터넷 신문은 그 어디에도 편집책임자 이름이 없다. 국민은 제쳐두고라도 자신들이 보필하는 대통령은 1년 전에 인터넷 신문과 공식 인터뷰도 했는데 산하 부처는 지금에야 이를 언론이라 지각 공인하는 꼴이 됐으니 안타깝다.
그런데도 선관위가 정간법에 의해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력을 동원, 인터넷 신문의 보도 자체를 막는 것은 위헌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전억제 금지의 원칙에 어긋나고, 예외적인 사전억제에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만 허용해야 한다는 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법원의 영장을 들고도 시비가 있는 언론에 대한 물리력 행사를 선관위가 마구 휘둘렀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0개월 후에나 있을 대통령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현존하는 위험이 있었다고 우길 작정은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말썽의 씨앗은 국회가 이미 뿌려놓았다. 유권자들에게 얼굴과 이름이 팔릴 기회가 많았던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선거운동과 선거보도에 많은 제약을 가하는 공직선거법을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제약들은 선거 때일수록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국민의 알 권리에는 역진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법의 참고서가 된 일본 공직선거법은 위헌 시비를 의식, 이러한 제약이 보도·평론·편성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기하고 있다. 미국도 이미 지금부터 60년도 더 전에 표현의 자유에 제약을 가하는 입법에는 합헌성 추정을 배제한다는 판례(캐롤라인 프로덕츠 사건·1938)를 남기고 있다.
'오마이뉴스' 사건은 이제 법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우리 법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독일과 일본의 판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독일 헌재는 66년 '국가는 언론에 영향을 주는 어떤 법에도 언론자유의 정신을 수용해야 한다(슈피겔 사건)', 일본 최고재판소는 79년 '선거법상 금지돼 있어도 공정보도만 했다면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는 판례를 남겼다(정경타임스 사건). 두 판례 모두 선거의 공정이라는 핑계로 언론의 자유가 아무렇게나 무시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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