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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250대1 경쟁률 … MIT 미디어랩의 한국 학생 5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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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 보스턴 MIT 미디어랩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석·박사 연구원 5명. 왼쪽부터 이진하·김재완·정재우·김익재·김윤희씨. ‘상상력 발전소’의 주역으로 크고 있다.

‘꿈의 발전소’ ‘상상력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미디어랩’. 세계 유수 대학에서 추천 받은 학생들이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와, 꿈을 현실로 만드는 정보기술(IT) 융합 연구에 매진하는 곳이다. 공상과학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허공의 가상 스크린에서 손으로 글과 그래픽을 편집하는 장면을 실제 구현한 연구소다. 눈썹·눈꺼풀·턱·눈동자를 움직여 기쁨·분노·슬픔·행복 같은 16가지 감정을 표현한 로봇을 포함해 상상 속의 제품이 속속 탄생을 알리는 곳이기도 하다.

MIT미디어랩은 지상 6층의 새 건물로 이전한 기념으로 지난 3월 말 오픈하우스 행사를 했다. 이어 최근에 새 건물을 찾아가 봤다. 미 동부의 손꼽히는 대학도시 보스턴 중심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 지나자 찰스강을 낀 MIT미디어랩이 눈에 들어왔다. 전망 좋은 6층 카페테리아에서 미디어랩에서 활약하는 한국 학생 9명 중 5명을 만났다. 미디어랩 한인 연구원 모임 대표인 정재우(스피치+모빌리티연구팀 소속) 박사과정 연구원을 비롯해 석·박사급인 이들이 내미는 명함이 눈길을 끌었다. ‘미디어랩’이란 소속만 같지, 명함 디자인과 색상이 제각각이었다. “통일된 명함 양식이 없냐”고 묻자 이구동성으로 “그러면 미디어랩이 아니지 않냐”며 웃었다. 개방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연구소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이들의 연구과제 역시 톡톡 튀었다. 이진하(23·만질수있는미디어팀) 연구원은 사람과 컴퓨터가 신체 동작으로 교감하는 휴먼인터랙션 연구에, 김재완(34·카메라컬처팀) 연구원은 단일 포커스로 찍은 평면 사진을 3D(3차원) 영상으로 바꿔주는 3D 인터페이스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김익재(37·스피치+모빌리티팀) 박사연구원은 “무너진 성벽을 향해 스마트폰을 비추면 화면에 화려한 옛 모습이 드러나는 ‘모바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홍일점인 김윤희(31·카메라컬처팀) 연구원을 보니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곳 출신으로 SK텔레콤 상무로 발탁됐다가 엔씨소프트에 둥지를 튼 윤송이(35) 박사다. 자그마한 체구에 똑 부러진 목소리로 “미디어랩 졸업생의 꿈은 교수가 아니라 사업가다. 무한 상상력의 무대인 3D 디지털 영상사업 쪽에서 대박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특정 아이템 아닌 연구소 전체로 투자받아
과도한 실적 경쟁 않고 미래 지향적 연구

한국 학생 대표인 정재우 박사과정 연구원은 여러 연구실을 기자에게 구경시켜줬다.

MIT미디어랩의 새 건물은 개방과 다양성을 최대한 키우게끔 설계됐다. 건물 중앙이 훤히 뚫려 있고, 창문이 투명해 어느 층, 어느 곳에서나 다른 연구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외부인도 간단한 신분 확인을 거쳐 연구실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연구원들은 오히려 방문객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열심히 설명하곤 했다. 정 연구원은 “연구소라고 하면 대개 외부인 출입은 물론 내부 인사들의 다른 연구실 출입을 통제하지만, 여기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창의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기 위해 완벽한 소통을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미디어랩은 투자자(스폰서)가 특정 연구 아이템을 겨냥해 돈을 대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라는 조직에 투자한다.

이진하 연구원은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다른 연구실과 과도한 실적 경쟁을 하지 않으면서 미래지향적인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다른 연구실의 연구과정에도 참여해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김재완 연구원은 “공학과 예술의 접목 등 여기선 융합 작업이 다반사다. 대신 특별한 전공이나 논문 제출 의무가 없다. 고정관념을 깨고 깜짝 놀랄 만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MIT미디어랩은 지난달 25일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새 연구실을 알리는 스폰서 미팅을 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LG전자·KT 등 내로라하는 IT 업체 담당자들이 대거 참가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김대환 KT 기술발굴담당 부장은 “상상 속에 머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창조적 연구 방식을 배워 회사에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정부 주도로 미디어랩 설립이 추진된다. 지식경제부는 명품 IT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한국판 MIT미디어랩’을 유치할 대학을 7~8월 중 확정한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한 곳을 추가 선정할 예정이다. MIT미디어랩도 출범 초기에 연구 방식과 스폰서 시스템이 일반에 낯설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 최고 연구소로 발돋움했다.

정 연구원은 “한국형 미디어랩이 전시행정이어서는 안 된다. 국가적 인재를 키울 백년대계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스턴 글·사진=이원호 기자

◆MIT 미디어랩=1985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된 IT 융합연구소. ‘인간을 위한 기술’이란 구호를 내걸고, IT를 미디어·예술·의료 등 전 산업에 녹여 학문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연구를 한다. 지난해 말 새로 지은 6층짜리 미디어랩 건물(사진)에서 올 3월 오픈하우스 행사를 하고 지난달에는 스폰서(투자자) 간담회를 열었다. 30여 명의 교수와 140여 명의 연구원이 30여 가지 그룹을 만들어 약 300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연구원들은 연구소에 투자하는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독립적이다. 투자자는 연구결과를 활용하는 혜택을 받지만 연구결과에 대한 소유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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